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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기획서를 보고 배운 것들 (공식으로는 배우지 못했던)

선배 기획서를 보고 배운 것들 (공식으로는 배우지 못했던)

온보딩 자료는 2페이지 입사했다. 온보딩 자료를 받았다. 2페이지다. "우리 회사 서비스 소개" "기획자 업무 프로세스" 끝. 사수가 말했다. "일단 이것저것 보면서 익혀봐." 뭘 봐야 하는데? 첫 주는 그냥 선배들 회의 듣고, 노션 페이지 구경하고, 슬랙 채널 둘러보는 게 다였다. 월급은 나가는데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노션 폴더를 뒤진다 할 게 없어서 노션을 뒤졌다. "기획서 아카이브" 폴더를 찾았다. 들어가 봤다. 와. 2년치 기획서가 있다. 50개는 넘는다. 선배가 쓴 기획서. 대표님이 쓴 초기 기획서. 심지어 안 된 프로젝트 기획서도 있다. 이게 교과서구나. 첫 번째 파일을 열었다. "회원가입 개편 기획서 v3.final.최종.진짜최종" 웃겼다. 근데 내용은 진지했다. 목차부터 달랐다 학교 과제 목차:서론 본론 결론선배 기획서 목차:배경 및 목적 현황 분석 개선 방향 상세 기획 예상 이슈 일정 및 리소스아. 이렇게 쓰는 거구나. 특히 "예상 이슈" 파트가 신기했다. 아직 안 만들었는데 이슈를 미리 쓴다고? 예상 이슈 - 개발: 기존 DB 마이그레이션 2주 소요 - 디자인: 3단계 인증 화면이 복잡해 보일 수 있음 - CS: 기존 회원 재가입 문의 예상미래를 예측하는 거였다. 문제를 먼저 말해두는 거. 회의에서 개발자가 "이거 안 돼요" 할 때, "네, 그래서 대안으로 B안을 준비했습니다" 하는 거. 나는 그냥 얼어붙는데.문장이 짧다 선배 기획서를 읽는다. 문장이 짧다. 내가 쓴 기획서: "본 기능은 사용자가 더욱 편리하게 상품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필터 기능을 개선하여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선배 기획서: "검색 필터를 개선한다. 사용자가 원하는 상품을 빠르게 찾게 한다." 끝. 한 문장에 한 가지만 말한다. 주어, 동사, 목적어.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같은 말은 없다. "함으로써" 같은 것도 없다. 그냥 한다. 개선한다. 추가한다. 삭제한다. 명확하다. 개발자가 읽었을 때, "이거 뭔 소리야?" 할 일이 없는 거다. 나는 그동안 뭘 쓴 거지. 스크린샷이 많다 선배 기획서는 스크린샷이 많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있다. "현황" 파트: 경쟁사 앱 스크린샷 6개. 우리 앱 현재 화면 4개. 문제점에 빨간 박스 표시. "개선안" 파트: 와이어프레임. 실제 구현된 다른 서비스 예시. "이런 느낌으로" 레퍼런스. 말보다 이미지. 처음에는 귀찮아서 안 넣었다. "말로 설명하면 되지" 했다. 틀렸다. 사수가 피드백했다. "이거 화면 어떻게 되는 건지 보여줘." 말로 10분 설명할 거, 이미지 하나면 10초다. 지금은 스크린샷부터 찍는다.숫자가 구체적이다 내 기획서: "많은 사용자가 이탈합니다." 선배 기획서: "회원가입 1단계에서 42%가 이탈합니다. (지난 달 기준 1,247명)" 구체적이다. "빠르게"가 아니라 "3초 이내". "자주"가 아니라 "주 2회 이상". "많은"이 아니라 "전체의 23%". 숫자를 찾아야 한다. GA를 열어본다. 데이터팀에게 물어본다. 없으면 "추정"이라고 쓴다. "추정 20% (경쟁사 A 사례 기준)" 이렇게라도 쓴다. 숫자가 있으면 회의가 달라진다. "이게 문제인가요?"가 아니라, "42%를 30%로 줄이려면?"으로 시작한다. 목표가 생긴다. 대안이 있다 선배 기획서에는 항상 대안이 있다. A안, B안, C안. A안: 이상적. 개발 4주. 리소스 많이 듦. B안: 현실적. 개발 2주. 핵심 기능만. C안: 최소. 개발 3일. 임시방편. 회의 때 본다. 대표님이 묻는다. "이거 다음 주까지 되나요?" 선배가 답한다. "A안은 어렵고, C안으로 먼저 하고 A안은 다음 분기에 하죠." 대안이 있으니까 협상이 된다. 나는 대안이 없었다. "안 되면 어떡하죠?" 만 했다. 지금은 A, B, C를 먼저 쓴다. 회의 전에. 왜 하는지를 쓴다 초반에 내 기획서: "푸시 알림 기능을 추가합니다." 사수 피드백: "왜?" "...사용자가 편하게?" "그게 왜 지금 필요한데?" 대답 못 했다. 선배 기획서를 본다. 배경 및 목적배경: - 재방문율이 18%로 경쟁사 대비 낮음 (경쟁사 평균 32%) - 이벤트 공지를 놓치는 사용자 클레임 주 5건 이상 - 앱 푸시 허용률은 67%로 양호함목적: - 재방문율 18% → 25% 달성 - 이벤트 참여율 12% → 20% 증가Why가 먼저다. What은 그다음이다. "이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다. 지금은 "배경 및 목적"부터 쓴다. 이게 명확하지 않으면 아래를 안 쓴다. 리스크를 먼저 말한다 예전엔 장밋빛만 썼다. "이렇게 하면 좋아질 겁니다!" 선배 기획서는 다르다. 리스크 - 개인정보 수집 동의 추가 필요 → 법무 검토 1주 - iOS 심사 시 리젝 가능성 30% (유사 사례 확인됨) - 푸시 차단 사용자는 혜택 없음 → 형평성 이슈미리 말한다. 문제를 숨기지 않는다. 회의 때 누가 "이거 법적으로 괜찮아요?" 물으면, "네, 법무팀 검토 요청했습니다. 다음 주 결과 나옵니다." 준비된 사람. 나는 "아 그건... 확인해보겠습니다" 했다. 준비 안 된 사람. 리스크 파트를 쓰면서 배운다. 기획은 좋은 것만 말하는 게 아니다. 나쁜 것까지 준비하는 거다. 일정을 역산한다 내 초기 기획서: "개발: 4주" 사수: "왜 4주야?" "...그냥요?" 틀렸다. 선배 기획서: 개발 일정 (총 4주)1주차: 기획 확정 및 디자인 (5일) 2주차: API 개발 (5일) 3주차: 화면 개발 및 연동 (5일) 4주차: QA 및 수정 (3일), 배포 (2일)여유 기간: 없음 리스크: QA에서 이슈 발생 시 일정 지연 가능쪼갠다. 역산한다. 배포일부터 거꾸로 센다. 그리고 개발자한테 물어본다. "이거 2주 안에 되나요?" 혼자 쓰는 게 아니다. 실패한 기획서도 본다 아카이브에 "보류" 폴더가 있다. 안 된 프로젝트들. 궁금해서 열어봤다. "커뮤니티 기능 기획서" 상태: 보류 사유: 리소스 부족, 우선순위 밀림 내용은 좋았다. 기획도 탄탄했다. 근데 안 됐다. 댓글이 있었다. "좋은 기획인데, 지금은 아니다. 내년에 다시 검토." 아. 좋은 기획도 안 될 수 있구나. 타이밍이 중요하구나. 실패 사례를 보면서 배운다. "이러면 안 되는구나." 성공 사례만 보면 착각한다.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둘 다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선배 기획서를 출력했다. 5개 골랐다. 잘 쓴 것들. 형광펜 들고 분석한다.목차 구조: 노란색 좋은 문장: 파란색 데이터 쓰는 법: 초록색 리스크 쓰는 법: 빨간색내 양식을 만든다. 선배 걸 베끼는 게 아니라, 구조를 배끼는 거다. 이제 기획서 쓸 때, 백지에서 시작 안 한다. 템플릿을 연다. 선배한테 배운 구조. 채운다. 여전히 부족하다. 사수한테 혼난다. "이거 왜 이렇게 했어?" 근데 예전보단 낫다. 3개월 전에는 "기획서를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 지금은 "뭘 더 써야 하는지" 안다. 다르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누가 앉혀서 안 가르쳐 준다. 온보딩 자료는 2페이지다. 나머지는 내가 찾는 거다.선배 기획서가 제일 솔직한 교과서다. 실전이 여기 다 있다.

개발자와의 대화가 항상 끝나는 방식: '확인해보겠습니다'

개발자와의 대화가 항상 끝나는 방식: '확인해보겠습니다'

또 말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오늘도 이 말로 끝났다. 개발자 민준 선배가 물었다. "이 부분 API 호출 몇 번 일어나는 거예요?" 나는 3초 멍때렸다. 그리고 말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회의실 나왔다. 복도에서 한숨 쉬었다. 3번째다. 오늘만.패턴이 보인다 아침 회의. "이거 로딩 시간 얼마 걸려요?" → "확인해보겠습니다." 오후 슬랙. "페이지네이션 몇 개 단위로?" → "확인해보겠습니다." 저녁 코드리뷰. "이 로직 왜 이렇게 짰어요?" → "확인해... 아니다, 이건 내가 짠 게 아니라서." 마지막 건 다행이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안 했다. 노션에 받은 질문 정리했다. 오늘 것만 7개. 이번 주 누적 23개. "확인해보겠습니다" 18번. 실제로 확인한 것 11개. 아직 못한 것 7개. 내일 확인해야 한다. 왜 현장에서 못 하나 이유는 안다. 모르기 때문이다. 민준 선배가 "API 호출 몇 번"이라고 물었을 때, 내 머릿속은 이랬다. 'API가 뭐더라. 아, 서버랑 주고받는 거. 근데 몇 번? 화면에 데이터 뜨는 게 몇 번인가? 아니면 사용자가 클릭할 때마다? 잠깐, 이거 무한스크롤인데 스크롤 내릴 때마다? 근데 캐싱하면 또 다른가?' 5초 지났다. 입을 열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안전하다. 틀린 말을 안 했다.사수는 다르다 지수 선배는 다르게 답한다. 개발자: "이거 API 몇 번이에요?" 지수 선배: "지금 기획은 5번인데, 퍼포먼스 이슈 있으면 배치로 묶을게요. 어느 정도까지 괜찮아요?" 개발자: "음... 10번까진 괜찮은데." 지수 선배: "그럼 지금 구조 ㄱㄱ요." 끝이다. 30초. 나는 같은 질문에 3시간 쓴다. 노션 뒤지고, 슬랙 검색하고, 기획서 다시 읽고. 그리고 답한다. "5번입니다. 괜찮을까요?" 개발자가 답한다. "10번까진 ㄱㄱ." 나는 또 쓴다. "네 감사합니다!" 3시간과 30초. 차이는 지식이다. 내가 모르는 것들 리스트를 만들었다. 개발자 질문에 못 답한 이유들.API 호출 횟수 - 기획서에 안 썼음 로딩 시간 - 측정 안 해봤음 페이지네이션 단위 - 안 정했음 에러 케이스 - 생각 못 함 권한 처리 - 빠뜨림 데이터 정합성 - 이게 뭔지 모름 트랜잭션 - 이것도 모름솔직히 4번부터는 단어가 어렵다. 지수 선배한테 물어봤다. "선배, 저 개발 공부 해야 할까요?" 선배가 웃었다. "공부는 무슨. 일하면서 배우는 거지." "근데 저 맨날 확인해보겠습니다만 해요." "응, 나도 주니어 때 그랬어. 2년 했나?" 2년. 나는 이제 6개월.협상은 지식에서 나온다 민준 선배가 말했다. "이거 구현 2주 걸려요." 지수 선배가 답했다. "이 기능 빼면 1주 되나요?" 민준 선배: "그것도 1.5주..." 지수 선배: "그럼 이 부분 1차 때 빼고, 2차 때 넣죠. 1주 컷?" 민준 선배: "오케이." 협상 끝. 나였으면 어땠을까. 민준 선배: "2주 걸려요." 나: "네... 2주요? 좀 길지 않나요...?" 민준 선배: "그럼 직접 짜실래요?" 나: "...확인해보겠습니다." 차이가 뭔가. 지수 선배는 안다. 어떤 기능이 무겁고, 뭘 빼면 가벼워지는지. 나는 모른다. 기획서에 다 필요해 보인다. 지식 없이는 협상할 수 없다. 협상은 대안 제시다. 대안은 구조 이해에서 나온다. 나는 구조를 모른다. 공부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봤다. "API란 무엇인가" 영상. 12분. 절반 이해했다. 노마드코더 무료 강의 들었다. HTML, CSS. 3시간. 웹페이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다. 민준 선배한테 물었다. "선배, 페이지네이션 몇 개씩 하는 게 좋아요?" "보통 20개? 근데 데이터 무거우면 10개." "무겁다는 게 뭐예요?" "이미지 많거나, 텍스트 길거나." 아. 이런 거구나. 다음 회의 때 물었다. "이 리스트 이미지 많은데, 10개씩 할까요?" 민준 선배가 놀랐다. "오, 좋은데요?" 확인해보겠습니다를 안 했다. 첫 번째 성공. 아직도 많이 모른다 여전히 못 답하는 질문이 많다. "이거 동시성 제어 어떻게 해요?" - 동시성이 뭔지 모른다. "락 걸어야 하나요?" - 락이 뭔지 모른다. "트랜잭션 단위 어떻게?" - 여전히 모른다. 검색했다. 어렵다. 나중에 공부한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부터. API 몇 번, 페이지네이션 몇 개, 로딩 시간 얼마. 이것만 답해도 확인해보겠습니다가 줄어든다. 이번 주 목표. 확인해보겠습니다 10번 이하. 지난주 18번. 8번 줄이기. 선배의 조언 지수 선배가 말했다. "너 요즘 질문 잘하더라." "아직도 많이 못해요." "아니, 예전엔 그냥 끄덕였잖아. 지금은 '이게 이런 건가요?' 물어봐." 맞다. 변했다. 회의 때 멍때리지 않는다. 모르는 단어 나오면 바로 손 든다. "죄송한데, 그게 뭐예요?" 처음엔 쪽팔렸다. 지금은 괜찮다. 모르는 걸 아는 게 더 쪽팔리다. "그리고 개발자들이 싫어하는 거 있어." "뭐요?" "나중에 확인해놓고 답 안 하는 거. 확인해보겠습니다 했으면 꼭 답해." 아. 7개 밀려있다. 오늘 다 답한다. 변화는 작다 극적인 성장은 없다. 갑자기 협상 귀재 된 거 아니다. 그냥 조금씩. 어제 못 답한 질문, 오늘은 답한다. 오늘 검색한 단어, 내일은 쓴다. 이번 주 회의록 봤다. "확인해보겠습니다" 12번. 목표 10번인데 2번 초과. 그래도 지난주보단 6번 줄었다. 다음 주 목표 8번. 한 달 뒤 5번. 언젠간 0번. 0번 되면 뭐라고 할까. 아마 이럴 것 같다. 개발자: "API 몇 번이에요?" 나: "지금 3번인데, 몇 번까지 ㄱㄱ인가요?" 개발자: "5번까진." 나: "오키." 상상만 해도 기분 좋다. 오늘도 확인한다 퇴근 전 노션 열었다. 밀린 질문 7개.페이지네이션 - 답변 완료 로딩 시간 - 개발 완료 후 측정 예정이라고 답함 에러 메시지 - 케이스별로 정리해서 공유 권한 처리 - 사수한테 물어봐서 답함 API 호출 - 플로우차트 그려서 공유 데이터 형식 - 샘플 만들어서 전달 일정 - 다시 조율해서 회신7개 다 했다. 민준 선배한테 슬랙 보냈다. "밀린 답변 다 드렸습니다." 읽음 떴다. 좋아요 눌렀다. 내일 또 질문 올 것이다. 또 모를 것이다. 또 확인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줄어든다. 확인해보겠습니다가.6개월 차 기획자의 성장은 느리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단어를 배운다. 그게 쌓이면 언젠간 협상이 된다. 오늘도 확인한다. 내일은 덜 확인한다.

기획서 검토받은 날 밤, 해야 할 수정이 30개

기획서 검토받은 날 밤, 해야 할 수정이 30개

오후 6시 20분, 알림 노션 알림이 떴다. "@신기획님 - 31개 코멘트" 사수가 검토를 끝낸 거다. 31개. 숫자를 다시 봤다. 31개 맞다. 기획서 페이지를 열었다. 빨간 말풍선이 줄줄이 달려 있다. 스크롤을 내려도 끝이 안 보인다. "이 부분 근거 추가 부탁드려요" "여기 플로우 다시 그려주세요" "이건 개발팀이랑 확인 필요합니다" 한 줄 한 줄 읽었다. 손이 차가워졌다.퇴근 후 계산 7시 반에 나왔다. 집 가는 지하철 안에서 노션을 다시 켰다. 코멘트를 카테고리별로 정리해봤다.단순 수정: 12개 (문구, 오타, 서식) 내용 보완: 9개 (근거, 데이터, 사례) 구조 변경: 6개 (화면 플로우, 정책) 확인 필요: 4개 (개발팀, 디자인팀)단순 수정은 30분이면 된다. 내용 보완은... 자료 찾는 시간까지 3시간? 구조 변경은 다시 그려야 한다. 2시간. 확인은 내일 아침에 물어봐야 한다. 총 5시간 30분. 집에 도착했다. 밤 9시. 씻고 밥 먹으면 10시. 내일 아침 10시 출근. 자야 한다. 근데 내일 오전에 회의가 두 개 있다. 오후에는 다른 기획서 초안 마감이다. 결국 오늘 밤에 해야 한다.밤 11시, 노션 앞 샤워하고 나왔다. 커피를 내렸다. 책상에 앉았다. 노션을 켰다. 31개 코멘트가 그대로 있다. 당연하다. 첫 번째 코멘트부터 시작했다. "배경 부분에 시장 규모 데이터 추가해주세요" 구글에 검색했다. "국내 OO 시장 규모" 나온 자료가 2021년 거다. 최신 자료를 찾았다. 리포트를 다운받았다. 4페이지까지 읽고 숫자를 복사했다. 15분 걸렸다. 첫 번째 완료. 30개 남았다.새벽 1시, 18개 완료 절반 넘게 했다. 등이 아프다. 단순 수정은 다 끝났다. 문구 고치고, 오타 고치고, 띄어쓰기 맞추고. 이건 쉬웠다. 내용 보완도 6개 완료했다. 근거 찾아서 붙이고. 참고 링크 달고. 출처 표기하고. 남은 건 어려운 것들이다. 화면 플로우 다시 그리기. 정책 로직 수정. 개발 공수 재확인. 머리가 안 돌아간다. 커피를 한 잔 더 내렸다. 사수 코멘트를 다시 읽었다. "이 플로우는 사용자가 헷갈릴 것 같아요. A→B→C 순서를 B→A→C로 바꾸면 어떨까요?" 맞는 말이다. 근데 이미 그린 화면이 8개다. 다시 그리면 번호를 다 바꿔야 한다. 설명도 다 고쳐야 한다. 한숨 나왔다. 근데 해야 한다. 새벽 2시 40분, 25개 완료 화면은 다 고쳤다. 번호 바꾸고. 설명 순서 바꾸고. 화살표 다시 그렸다. 정책 로직도 수정했다. "케이스 A일 때 예외처리 추가 필요" 표를 하나 더 만들었다. 조건과 결과를 정리했다. 남은 게 6개다. 근데 이 6개가 문제다. "개발팀 검토 후 공수 확인 부탁드려요" "디자인 가이드랑 맞는지 확인해주세요" "운영팀 의견 받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건 내일 아침에 물어봐야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다. 25개 완료. 6개 대기. 저장하고 노션을 닫았다. 다음날 아침 10시에 출근했다. 눈이 퉁퉁 부었다. 사수한테 메시지 보냈다. "어제 코멘트 25개 반영했습니다. 6개는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답장이 왔다. "고생했어요. 확인해볼게요." 오전 회의 두 개를 버텼다. 점심 먹고 개발팀한테 물어봤다. "이 기능 공수 어느 정도 나올까요?" "음... 3일 정도?" 노션에 적었다. "개발 공수: 약 3일 (백엔드 2일, 프론트 1일)" 디자인팀한테도 물어봤다. "이 버튼 위치 가이드랑 맞나요?" "여기는 오른쪽 정렬이 맞아요." 또 고쳤다. 오후 4시. 31개 완료. 사수한테 멘션 달았다. "전체 반영 완료했습니다. 재검토 부탁드립니다." 답장은 저녁에 왔다. "확인했어요. 많이 좋아졌네요. 고생했어요." 많이 좋아졌다.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다. 또 코멘트 달릴 수도 있다. 근데 괜찮다. 어제보단 나아졌다.31개 코멘트, 밤새서 25개 고치고, 다음날 6개 마저 끝냈다. 사수가 "좋아졌다"고 했다. 오늘 밤은 일찍 잔다.

사수가 '잘했어'라고 한 말 한 달 버팀

사수가 '잘했어'라고 한 말 한 달 버팀

사수가 '잘했어'라고 한 말 한 달 버팀 그날의 슬랙 메시지 오후 4시 32분. 슬랙 알림이 떴다. "신기획님, 이번 화면 정의서 잘했어요. 플로우 깔끔하네요." 사수였다. 세 번 읽었다. 네 번째는 소리 내서 읽었다. 다섯 번째는 스크린샷 찍었다. '잘했어요.' 입사 후 8개월. 처음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건 좀...' '이 부분 다시' '왜 이렇게 했어요?' 빼고는 처음이었다. 손이 떨렸다. 마우스 커서가 화면을 헤맸다. 옆자리 디자이너가 물었다. "왜 웃어요?" "아뇨." 웃고 있었다. 몰랐다.8개월의 무게 입사 첫날. 노션 계정 만들었다. 기획서 양식 받았다. 사수가 말했다. "일단 이것부터 따라 해봐요." 따라 했다. 2주 걸렸다. "이건 왜 이렇게 했어요?" "..." "다시 해봐요." 다시 했다. 1주 더. "음... 이 부분은..." 또 고쳤다. 3개월차. 회의록 담당이 됐다. 회의 내용 받아적기. 정리. 공유. "회의록은 잘하네요." 이게 칭찬인가 싶었다. 5개월차. 화면 정의서 처음 맡았다. 사수 기획서 열어서 구조 복사. 내용만 바꿨다. "이건 그냥 제 거 따라 한 거예요?" "...네." "본인 생각을 넣어야죠." 본인 생각이 뭔데. 나도 모르겠는데. 7개월차. 개발자 미팅에서 얼어붙었다. "이 플로우 말이 안 되는데요?" "아... 그게..." 사수가 대신 설명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저녁. 화장실 거울 보면서 생각했다. '나 기획자 맞나.'그 화면 정의서 그 화면 정의서는 특별할 게 없었다. 회원가입 플로우. 누가 봐도 뻔한 거.이메일 입력 인증번호 발송 인증 확인 비밀번호 설정 완료다만 이번엔 좀 달랐다. 사수 기획서 안 봤다. 경쟁사 3개 가입해봤다. 어디서 막히는지 체크했다. 토스: 인증번호 자동 입력. 편하다. 당근: 재전송 버튼 위치 애매. 못 찾았다. 뱅크샐러드: 비밀번호 규칙 설명 친절. 좋다. 메모했다. 우리 서비스는 어떻게 할까. 40대 이상도 쓴다. 자동 입력 힘들면? 재전송 버튼은 크게. 비밀번호 규칙은 입력창 바로 아래. 플로우 그렸다. 예외 케이스 7개 추가. 에러 메시지도 썼다. "인증번호를 다시 확인해주세요." 아니다. 너무 딱딱하다. "앗, 인증번호가 일치하지 않아요. 다시 입력해주세요!" 이것도 오글거린다. "인증번호를 확인해주세요 :)" 이모티콘은 좀... 결국 첫 번째로 돌아갔다. 명확한 게 낫다. 3일 걸렸다. 사수한테 보냈다. 답장이 없었다. 6시간 후에 왔다. "잘했어요." 그 말. 한 달의 연료 그 말로 한 달을 버텼다. 진짜다. 다음 주. 개발자가 물었다. "이 버튼 위치, 왜 여기예요?" 전엔 얼어붙었다. 이번엔 달랐다. "사용자 테스트 3건 봤는데요, 오른쪽 하단보다 중앙 하단이 인식률이 높았어요." 거짓말이다. 테스트 안 했다. 경쟁사 분석한 거다. 그래도 개발자가 고개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이겼다. 작은 승리. 2주 차. 회의에서 의견 냈다. "이 기능, 우선순위 낮춰도 될 것 같은데요. 사용자 니즈가..." 말이 나왔다. 떨렸지만 끝까지 했다. 팀장이 물었다. "근거는?" "GA 데이터 보니까 이 페이지 체류 시간이 평균 8초예요. 읽지도 않고 넘어가요." 준비했다. 어젯밤에 GA 2시간 봤다. 팀장이 웃었다. "오케이. 다음 스프린트로 미뤄요." 내 의견이 반영됐다. 처음이었다. 3주 차. 후배가 들어왔다. 나보다 어렸다. "선배님, 화면 정의서 어떻게 써요?" 선배님. 나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일단 경쟁사부터 써봐. 3개 이상." 사수가 내게 안 알려준 방법을 알려줬다. 내가 혼자 깨달은 것. "네!" 후배가 고개 숙였다. 이상했다. 좋았다. 4주 차. 사수가 또 물었다. "신기획님, 이번 기획서 일정 어때요?" "3일이면 될 것 같아요." "이유는?" "이번 건 신규 플로우가 아니라 개선이잖아요. 기존 문서 베이스로 수정하면 빠를 것 같아요." 사수가 웃었다. "맞네요. 그럼 부탁해요." 부탁. 지시가 아니라 부탁이었다.왜 이렇게까지 왜 한 마디에 이렇게까지 흔들렸을까. 생각해봤다. 8개월 동안 나는 내가 뭘 하는지 몰랐다. 회의록 쓰고, 화면 그리고, 피드백 받고, 고치고. 이게 맞나. 틀렸나. 몰랐다. 기준이 없었다. 정답이 없었다. 사수 말이 정답이었다. "이건 아니에요." → 아니구나. "다시 해봐요." → 틀렸구나. 틀린 것만 배웠다. 맞는 건 몰랐다. 그러다 처음 들었다. "잘했어요." 아. 이게 맞는 거구나. 그 순간 좌표가 생겼다. 북극성 같은 거. '이 방향이 맞아.' 그래서 그렇게 기뻤던 거다. 방향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인정받고 싶었다. 기획자로서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람 괜찮네.' '좀 하네.' '제대로 배우고 있어.' 그런 거. 비전공 출신이다. CS 모른다. SQL 못 한다. 디자인 못 한다. 개발 모른다. 그냥 열심히 할 줄만 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경쟁사 분석하고, GA 보고, 사수 기획서 읽고, 유튜브 강의 들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신기획, 쟤 괜찮아.' 그 한 마디가 그걸 줬다. 그래서 한 달을 버텼다. 지금 오늘도 출근했다. 사수가 슬랙 보냈다. "신기획님, 이번 기획서 좀 아쉬운데요. 케이스 하나 빠뜨렸어요." 웃었다. "아 진짜네요. 오후에 수정할게요." 안 무너졌다. 한 달 전 같았으면 하루 종일 우울했을 거다. 이젠 안다. 틀려도 괜찮다. 고치면 된다. 한 번 잘하면, 또 잘할 수 있다. 그 '잘했어요' 한 마디가 증명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기획서 연다. 또 틀릴 거다. 또 고칠 거다. 언젠가 또 들을 거다. "잘했어요." 그때까지.작은 칭찬 하나. 생각보다 오래 간다.

사수한테 물어볼까, 말까 5분의 고민

사수한테 물어볼까, 말까 5분의 고민

사수한테 물어볼까, 말까 5분의 고민 오후 3시 22분 화면 정의서를 쓰다가 멈췄다. 로그인 페이지 기획인데, 소셜 로그인 버튼을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모르겠다. 상단? 하단? 구글링을 30분 했다. 답은 없다. 케바케다. 사수 책상을 본다. 헤드셋을 끼고 있다. 개발자랑 통화 중인 것 같다. 손으로 뭔가 그리면서 설명한다. 바쁘다. 슬랙을 연다. "OO님,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까지 쓴다. 지운다. 다시 쓴다. 또 지운다. 질문 하나의 무게 주니어 질문은 무겁다. 사수 시간을 뺏는다. "5분만요"라고 하지만 5분이 아니다. 맥락 설명 3분, 질문 1분, 대답 듣고 이해하는 시간 5분. 최소 10분이다. 그리고 반응이 무섭다. "이건 기본인데?" "지난번에 말했었는데." "케이스 스터디 안 해봤어?" 실제로 들은 말들이다. 사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바쁜 사람이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3일은 간다.구글링의 늪 결국 혼자 한다. "로그인 페이지 소셜 로그인 버튼 위치"를 검색한다. 네이버, 카카오, 토스 케이스를 본다. 다 다르다. 벤치마킹 문서를 만든다. 노션에 캡처를 붙인다. 10개 서비스를 비교한다. 5개는 상단, 3개는 하단, 2개는 중간이다. 결론은 "서비스 특성에 따라"다. 30분이 지났다. 답은 없다. 사수한테 물어보면 3분 만에 끝날 일이다. "우리 서비스는 신규 가입률이 중요하니까 상단에 크게 넣어. 이유는..." 하지만 묻지 못한다. 5분의 고민 타임라인 3시 22분: 질문 생김 3시 25분: 구글링 시작 3시 40분: 답 없음 확인 3시 42분: 사수 책상 쳐다봄 3시 43분: 슬랙 열고 닫기 3회 반복 3시 47분: "이거 물어봐도 되나" 자문자답 3시 50분: 다시 구글링 4시 10분: 벤치마킹 문서 작성 중 4시 30분: 여전히 확신 없음 질문 하나에 1시간 10분이다.물어봤을 때의 반응 3종 타입 1: 친절형 "아 그거? 우리 서비스는 신규 유입이 중요해서 상단에 넣어. 근데 왜 궁금했어?" 5분 통화. 문제 해결. 추가 팁까지. 행복하다. 타입 2: 바쁜형 "음... 그거 케바케인데, 다른 서비스 좀 보고 정리해서 공유해줘. 그럼 같이 봐." 15분 통화. 결국 내가 해야 함. 허무하다. 타입 3: 차갑형 "그 정도는 스스로 판단해야지. 주니어라고 다 물어보면 안 돼." 3분 통화. 상처받음. 3일 우울. 확률은 4:4:2다. 타입 3이 나올 확률 20%. 하지만 그 20%가 무섭다. 혼자 해결했을 때 결국 상단에 넣었다. 화면 정의서를 완성했다. 사수한테 보냈다. "로그인 화면 검토 부탁드립니다." 30분 뒤 답장. "소셜 로그인 버튼 위치 왜 상단에 뒀어? 우리 서비스는 기존 회원 비율이 70%라서 일반 로그인이 더 중요해. 순서 바꾸고, 소셜은 하단으로." 2시간이 날아갔다. 그때 물어봤으면 5분이었다.5분 고민의 정체 이 5분은 질문을 고민하는 시간이 아니다. 평가받는 걸 두려워하는 시간이다. "이것도 모르나" 판단받을까 봐. "맨날 묻네" 소리 들을까 봐. "사수 시간 뺏는 애" 낙인찍힐까 봐. 그래서 2시간을 혼자 쓴다. 그리고 틀린다. 그리고 더 미안하다. 악순환이다. 질문 잘하는 선배 관찰 옆팀 2년 차 선배를 봤다. 이 사람은 질문을 잘한다. 사수가 바빠도 묻는다. 거절당해도 다시 묻는다. 차이점을 찾았다. 질문 전 메시지: "OO님, 로그인 화면 소셜 로그인 버튼 위치 관련 질문 있습니다. 3가지 옵션 정리했는데, 10분 정도 시간 되실 때 여쭤봐도 될까요?" 구체적이다. 준비했다는 걸 보여준다. 시간도 명시한다. 나는 "질문 있어요"만 보낸다. 준비 없이. 그러니까 "기본도 모르나" 소리 듣는다. 사수도 주니어였다 어제 회식에서 사수가 말했다. "나도 주니어 때 질문 못 했어. 그래서 야근 엄청 했지. 혼자 삽질하다가. 지금 생각하면 그냥 물어볼 걸." 사수도 같았다. "근데 너는 질문을 너무 안 해. 가끔은 '이 친구 이해하고 있나?' 싶어. 더 물어봐도 돼." 충격이었다. 나는 폐 끼칠까 봐 안 물었다. 사수는 답답해했다. 서로 오해였다. 오늘의 실험 오늘은 물어봤다. 오전 11시. 사수가 커피 마실 때. "OO님, 5분만 시간 되세요? 화면 흐름 관련 질문 있어서요." "어 그래, 뭔데?" 화이트보드에 그렸다. 3가지 옵션을 정리해갔다. 각 장단점도. "음... 2번이 좋겠는데? 이유는..." 5분 만에 해결. "이렇게 정리해서 오니까 좋다. 다음에도 이렇게 해." 칭찬까지 받았다. 2시간 구글링보다 5분 질문이 나았다. 질문의 기술 지금 배우는 중이다. 질문하기 전:30분 혼자 고민 옵션 2-3개 정리 각 장단점 생각 구체적으로 무엇이 궁금한지 명확히질문할 때:사수 상황 확인 소요 시간 명시 준비한 자료 보여주기 "A와 B 중 뭐가 나을까요?" 선택지 제시질문 후:노션에 기록 같은 질문 반복 안 하기 비슷한 케이스에 적용주니어니까 묻는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배우려고 묻는다. 다르다.5분 고민하지 말고, 5분 질문하자. 그게 더 빠르다.

'기획자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에 1년 뒤에도 못 답할 것 같은 불안감

'기획자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에 1년 뒤에도 못 답할 것 같은 불안감

친구가 물었다 "너 회사에서 뭐 해?" 어제 대학 동기 만났다. 술 한 잔 걸치고 나니까 이 질문이 나왔다. "응... 기획자야." "기획자? 그게 뭔데?" 멈췄다. 입이 안 열렸다. "그냥... 서비스 기획을 하는 거지." "아니 그게 뭔데? 구체적으로." 모르겠다. 진짜로. 2년 차인데 설명을 못 한다. 개발자는 코딩한다. 디자이너는 그린다. 마케터는 광고한다. 나는? 회의록 쓴다. 화면 정의서 그린다. 피드백 받는다. 이게 기획인가?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노션 켰다. 사수가 남긴 코멘트: "이 화면 플로우 다시 생각해봐요. 사용자 입장에서 불편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근데 뭐가 불편한 건데? 30분 동안 화면만 봤다. 모르겠다. 검색했다. "화면 플로우 설계 방법". 나오는 건 다 안다. "사용자 관점에서", "직관적으로", "단계를 줄여라". 안다고. 근데 어떻게? 결국 비슷한 서비스 10개 열어서 봤다. 카카오는 이렇게 했네. 토스는 저렇게 했네. 그래서 나는? 베끼는 것도 아니고. 분석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기만 한다. 점심시간. 개발자 선배가 물었다. "신기획님, 이 기능 왜 필요한 거예요?" "아... 그게... 사용자들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요." "어떤 데이터 보고 판단하신 거예요?" 데이터. 없다. "일단... 사수님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말하고 나서 창피했다. 선배는 그냥 웃었다. 기획자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내가 하는 일 오늘 한 일 정리해봤다. 오전 10시: 출근. 사수 피드백 확인. 오전 10시 30분: 화면 정의서 수정. 오전 11시: 회의. 개발팀이랑 디자인팀이랑. 오후 12시: 회의록 작성. 오후 1시: 점심. 오후 2시: PRD 수정. 사수 검토 요청. 오후 3시: 피드백 받음. 다시 수정. 오후 4시: 데이터팀한테 질문 보냄. "이 지표 어떻게 확인하나요?" 오후 5시: QA 시트 작성. 오후 6시: 내일 할 일 정리. 오후 7시 30분: 퇴근. 이게 기획인가? 서류 작성인가? 회의록 작성자인가? 개발자는 코드를 친다. 화면에 뭔가 만들어진다. 디자이너는 그린다. 예쁜 게 나온다. 나는? 문서만 쌓인다. 노션 페이지만 늘어난다.사수한테 물어봤다 용기 냈다. 물어봤다. "팀장님, 저 질문 있는데요." "응, 말해봐." "기획자는... 정확히 뭐 하는 사람인가요?" 사수가 웃었다. 비웃는 게 아니라 그냥. "나도 2년 차 때 그 고민했어." "그럼... 답은 뭔가요?" "답은 없어. 근데 내가 생각하는 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사람?" 또 이런 추상적인 답. "그럼 팀장님은 어떻게 일하세요?" "나는... 일단 왜 이게 필요한지부터 생각해. 그 다음에 사용자가 뭘 불편해하는지. 그 다음에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알겠다. 그래서? "근데 신기획씨는 지금 뭐가 제일 답답해?" "제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문서만 쓰는 것 같고." "그건 주니어 때 다 그래. 일단 문서 쓰는 법부터 배워야 하니까." 위로인지 현실인지 모르겠다. "1년 뒤에도 이럴까요?" "노력하면 달라지겠지. 안 하면 그대로고." 뭔가 찝찝했다. 퇴근길 지하철 탔다. 유튜브 켰다. "PM 되는 법", "기획자 역량", "주니어 기획자 성장". 영상 10개 봤다. 다 비슷하다. "사용자 관점을 가져라", "데이터를 보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라". 안다. 알아. 근데 어떻게? 사용자 관점. 나도 사용자인데 내 불편함은 회사가 안 중요하대. 데이터. SQL 모르는데 어떻게 봐? 커뮤니케이션. 회의 때 입도 못 열어. 집 도착했다. 원룸. 50만원. 노트북 켰다. 토이 프로젝트 기획서. "가상의 배달앱 기획서". 3주째 첫 페이지. 문제 정의부터 막힌다. "사용자들은 배달앱에서 무엇을 불편해할까?" 모르겠다. 나는 불편한 게 없는데. 검색했다. "배달앱 불편한 점". 나오는 대로 적었다. 이게 기획인가? 복붙인가? 노트북 껐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만 봤다. 1년 뒤 상상해봤다. 1년 뒤. 친구가 또 물어본다. "너 뭐 하는 사람이야?" 나는 또 말한다. "그냥... 기획자야." "그래서 뭐 하는데?" 또 막힌다. 또 설명 못 한다. 3년 차가 돼도 이러면 어떡하지. 개발자는 포트폴리오에 코드 올린다. 디자이너는 비핸스에 작품 올린다. 나는? 회의록 올리나? PRD 올리나? 회사 기밀이라 못 올린다. 그럼 뭘로 증명하지? 내가 성장했다는 걸. 무섭다. 지금 열심히 하는 게 맞는 건가? 아니면 방향이 틀린 건가? 회의록 잘 쓰는 게 성장인가? 화면 정의서 예쁘게 그리는 게 성장인가? 모르겠다. 그래도 어제 있었던 일. 개발자 선배가 말했다. "신기획님이 정리한 화면 플로우, 생각보다 괜찮던데요?" "진짜요?" "응. 예외 케이스까지 생각한 거 보고 좀 놀랐어요." 그 말 듣고 하루종일 기분 좋았다. 사수가 말했다. "요즘 회의록 잘 쓰네. 액션 아이템 정리가 깔끔해." 별것 아닌데 기뻤다. 여자친구가 말했다. "너 요즘 일 얘기할 때 재밌어 보여." 그런가? 잘 모르겠다. 내가 성장하는 건지. 근데 한 가지는 안다. 작년보다는 낫다는 거. 작년엔 PRD가 뭔지도 몰랐다. 지금은 쓴다. 작년엔 회의 때 받아적기만 했다. 지금은 가끔 질문한다. 작년엔 사수한테 질문도 못 했다. 지금은 묻는다. 느린 거 안다. 답답한 거 안다. 근데 멈춘 건 아니다. 오늘도 출근한다. 노션 연다. 사수 피드백 확인한다. 수정한다. 회의 들어간다. 받아적는다. 화면 정의서 그린다. 검토받는다. 이게 기획인가? 아직도 모르겠다. 근데 계속한다. 1년 뒤에도 이 질문에 못 답할 수도 있다. "기획자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괜찮다. 3년 뒤엔 답할 수 있을지도. 아니면 5년 뒤. 지금은 모르는 게 당연한 거다. 2년 차니까. 배우는 중이니까."기획자가 뭐냐고? 글쎄. 아직 배우는 중이다."

노션 회의록을 20번 고쳐 보낸 밤 11시

노션 회의록을 20번 고쳐 보낸 밤 11시

노션 회의록을 20번 고쳐 보낸 밤 11시 7시 반 퇴근, 9시 다시 켰다 퇴근했다. 집에 왔다. 씻었다. 그런데 계속 생각났다. 오후에 쓴 회의록. "제가 정리해서 공유드리겠습니다." 이 문장이 너무 형식적이지 않나. 딱딱하지 않나. 사수가 보면 '얘 또 인터넷에서 베꼈네' 생각하지 않을까. 노트북 다시 켰다. 노션 들어갔다. 회의록 페이지 열었다. 오후 5시에 공유한 거. 아직 아무도 안 봤다. 조회수 1. 나.문제는 어투였다 회의록을 다시 읽었다. ## 논의 사항 - A안 vs B안 검토 - 개발 일정 조율 - 다음 주 프로토타입 공유## 결정 사항 - A안으로 진행 - 개발팀 검토 후 재논의## 액션 아이템 - 기획서 수정: 신기획 (1/15까지) - 디자인 시안: 최디자이너 (1/17까지)이게 맞나. "논의 사항"이 맞나 "논의사항"이 맞나. 띄어쓰기. 검색했다. 국립국어원. "논의 사항"이 맞대. 그럼 "결정사항"도 띄어야 하나. 수정했다.20번의 수정 9시 10분. 첫 수정. "제가 정리해서" → "정리해서" 너무 낮춘 것 같아서. 팀 막내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9시 15분. 두 번째 수정. "정리해서" → "제가 정리해서" 아니다. 선배들한테는 낮춰야지. 9시 20분. 세 번째. 표 구조를 바꿨다. 칼럼을 3개에서 4개로. | 항목 | 내용 | 담당자 | 기한 | 이게 더 깔끔해 보인다. 9시 30분. 네 번째. 아니다. 4개는 너무 많다. 3개로 복구. | 항목 | 담당자 | 기한 | "내용"은 항목에 포함하면 되니까. 9시 40분부터 10시까지. 다섯 번째부터 열두 번째 수정.이모지 추가 (📌, ✅, 📝) 이모지 삭제 (너무 가볍나) 소제목 폰트 변경 (Heading 2 → Heading 3) 다시 복구 (Heading 2가 맞다) 들여쓰기 조정 불릿 스타일 변경 (• → -) 다시 복구 (•가 낫다) 날짜 형식 (1/15 → 01/15 → 1월 15일)정신없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다. 문장 하나의 무게 10시 10분. "제가 정리해서 공유드리겠습니다." 이 문장을 또 본다. 문제가 뭔지 알았다. "드리겠습니다"가 문제다. 너무 형식적이다. 회사 공문 같다. "제가 정리해서 공유할게요." 이게 낫나. 아니다. 너무 가볍다. 우리 팀은 존댓말 쓴다. "제가 정리해서 공유하겠습니다." 이건 어떤가. "드리겠습니다"랑 "하겠습니다"의 차이. 검색했다. 네이버 지식인. 회사 커뮤니티. 답은 없다. 다 케바케래.사수는 이런 거 안 하나 사수 회의록을 열어봤다. 지난주 회의록. 사수가 쓴 거. ## 논의 - XX 기능 추가 검토 - 일정 조정 필요## 결정 - 일단 고## TODO - 기획서: 나 (D-3) - 검토: 개발팀엄청 간단하다. "일단 고"라니. 이게 되네. 나는 왜 못 하지. "제가 정리해서 공유드리겠습니다" 이런 거 안 쓴다. 사수는. 페이지 하단에 댓글도 없다. 조회수 12. 다들 본다. 아무 말 없다. 내 회의록은. 조회수 1. 아직도 나. 열세 번째부터 스무 번째 10시 40분. "공유드리겠습니다" → "공유하겠습니다" 확정했다. 이걸로 간다. 10시 45분. "공유하겠습니다" → "공유드릴게요" 아니다. 중간이 낫다. 10시 50분. 페이지 상단 커버 이미지를 바꿨다. 노션 기본 이미지. 파란색 그라데이션. 11시. 커버 이미지 삭제. 없는 게 깔끔하다. 11시 5분. 제목을 바꿨다. "1/10 서비스기획 회의록" → "서비스기획 회의_25.01.10" 날짜 형식을 뒤로. 11시 7분. 다시 복구. 앞에 있는 게 낫다. 11시 10분. 마지막 수정. 맨 아래 한 줄 추가했다. "추가 의견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쓰고 지웠다. 쓰고 지웠다. 결국 남겼다. 저장했다. 페이지 닫았다. 11시 15분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 들었다. 노션 앱 켰다. 회의록 다시 확인했다. 조회수 1. "추가 의견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이 문장이 또 신경 쓰인다. 너무 형식적이지 않나. "의견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이게 낫나. 노트북 다시 킬까. 아니다. 핸드폰으로 수정했다. 스물한 번째. "의견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 이모티콘까지 넣었다. 저장했다. 페이지 닫았다. 3초 뒤 다시 열었다. 이모티콘 지웠다. 너무 가볍다. 스물두 번째 수정. 왜 이러나 11시 반. 불 껐다. 눈 감았다. 그런데 잠이 안 온다. 회의록이 계속 생각난다. 내일 아침에 사수가 본다. 댓글 달까. "수고했어요" 할까. 아니면 "이거 수정해" 할까. "신기획님 회의록은 너무 딱딱해요." 이럴까. 상상하니까 심장 뛴다. 내일 아침 출근하면. 노션 알림 확인부터 할 거다. 조회수 몇 개 찍혔나. 댓글 달렸나. 사수가 이모지 반응 남겼나. 👍 아무것도 없으면. 그것도 불안하다. 다들 안 본 건가. 링크를 잘못 보낸 건가. 1년 차의 밤 침대에서 일어났다. 11시 50분. 노트북 켰다.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회의록 괜찮다. 이제 괜찮다. 20번 넘게 고쳤으니까. 사수가 뭐라고 하면. "네 수정하겠습니다" 하면 된다. 어차피 또 고칠 거다. 회의록 쓸 때마다 이런다. 기획서 쓸 때도 이런다. 슬랙 메시지 보낼 때도 이런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확인 부탁드릴게요." 매번 고민한다. 1년 뒤에는 안 그럴까. 2년 차 되면 "일단 고" 이렇게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노트북 닫았다. 불 껐다. 조회수 1. 내일이면 오르겠지.야 11시에 회의록 스무 번 넘게 고쳤다. 내일 사수가 "ㅇㅇ" 이러고 넘어가면 허무할 거다. 그래도 또 고칠 거다.

기획서 양식 검색은 하루 종일, 내 글은 30분

기획서 양식 검색은 하루 종일, 내 글은 30분

기획서 양식 검색은 하루 종일, 내 글은 30분 오전 10시, 구글 검색부터 출근했다. 사수가 말했다. "이번 기능 PRD 작성해봐." PRD가 뭐지. 일단 검색했다. "PRD 양식", "PRD 템플릿 다운로드", "PRD 예시". 나오는 건 다 다르다. 어떤 건 10페이지, 어떤 건 2페이지.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노션 템플릿 사이트 10개 탭을 열었다. 다 다르다. Product Requirements Document, Project Request Document, Business Requirements Document. 이게 다 같은 건가, 다른 건가. 30분 지났다. 아직 한 글자도 안 썼다.선배 기획서 열어보기 회사 노션 들어갔다. 선배들이 쓴 기획서를 찾았다. 7개 열었다. 구조가 다 다르다. A 선배: 배경 - 목적 - 요구사항 - 화면정의서 B 선배: 개요 - 문제정의 - 해결방안 - 일정 C 선배: 그냥 화면정의서만 뭐가 정답이지. A 선배 기획서를 복사했다. 제목만 바꿨다. "배경"이라는 챕터에 커서를 놨다. 뭘 써야 하나. 배경이 뭐지. 왜 만드는 건지? 데이터는 어디서 가져와? 다시 구글 검색. "기획서 배경 예시", "기획서 배경 작성법". 1시간 지났다. 배경 챕터는 아직 비어있다.BRD는 또 뭔데 사수한테 슬랙이 왔다. "BRD도 같이 써야 할 것 같은데" BRD. 처음 듣는다. 검색했다. Business Requirements Document. PRD랑 뭐가 다른 건데. 어떤 블로그는 "BRD를 먼저 쓰고 PRD를 쓴다"고 한다. 어떤 블로그는 "요즘은 BRD 안 쓴다"고 한다. 유튜브를 켰다. "BRD 작성법". 23분짜리 영상이다. 배속으로 봤다. 이해는 안 된다. 다시 봤다. 여전히 모르겠다. 회사 노션에 "BRD"로 검색했다. 문서가 3개 나온다. 열어봤다. 2개는 2년 전 거다. 1개는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오후 2시다. 점심을 먹었나 기억이 안 난다. 기획서는 여전히 백지다. 화면정의서 양식 지옥 "일단 화면정의서부터 그려볼까." 피그마를 켰다. 와이어프레임을 그려야 한다. 어떻게 그리지. 선배 파일을 열었다. 컴포넌트가 잔뜩 있다. 이걸 어떻게 쓰는 거지. 다시 검색. "화면정의서 예시", "화면정의서 양식 다운로드". PPT 양식이 나온다. 다운받았다. 열어봤다. 너무 정갈하다. 나는 이렇게 못 그린다. 노션으로 그릴까, 피그마로 그릴까, PPT로 그릴까. 회사는 노션 쓰는데, 선배는 피그마 쓰던데, 구글에는 PPT가 많은데. 30분 동안 툴을 고민했다. 결정 못 했다.오후 4시, 사수의 메시지 "진행 상황 어때?" 심장이 멎었다. "...지금 구조 잡는 중이에요." 거짓말이다. 구조는 없다. 탭 20개만 열려있다. 노션 페이지는 제목만 있다. "5시까지 1차 드래프트 공유해줘." 1시간 남았다. 30분의 폭발 더는 미룰 수 없다. 양식은 됐다. 일단 쓴다. A 선배 기획서 구조를 복사했다. 챕터 제목만 남기고 내용을 지웠다. 배경: 우리 서비스에 XX 기능이 없어서 불편하다고 VOC가 왔다. 목적: XX 기능을 만들어서 사용자 불편을 해소한다. 요구사항: 1) 버튼을 누르면 2) 팝업이 뜬다 3) 확인을 누르면 저장된다. 이게 맞나 모르겠다. 일단 썼다. 화면정의서는 손으로 그렸다. 아이패드에 네모 몇 개 그리고 캡처했다. 노션에 붙였다. 25분 걸렸다. 사수의 피드백 5시 1분에 공유했다. 5시 3분에 답장 왔다. "오케이, 이 정도면 베이스는 됐어. 내일 같이 보완하자." ...됐다고? 하루 종일 양식 검색하고, 30분 만에 쓴 게, 됐다고? 깨달은 것 양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PRD든 BRD든, 10페이지든 2페이지든, 피그마든 노션이든. 사수가 원한 건 '완벽한 양식'이 아니었다. "지금 뭘 만들려는지, 왜 만드는지, 어떻게 동작하는지"만 알면 됐다. 나는 하루 종일 양식을 고민했다. 정작 "뭘 만들지"는 30분 만에 정리했다. 순서가 반대였다. 그다음 날 출근했다. 사수가 내 기획서를 열었다. "배경 부분에 데이터 좀 넣어줘. VOC 몇 건 왔는지." "요구사항에 예외 케이스 추가해줘. 인터넷 끊기면 어떻게 되는지." "화면 2번이랑 3번 사이에 로딩 화면 필요할 것 같아." 30분 동안 수정했다. 살이 붙었다. 이게 기획이었다. 양식 찾는 게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는 거. 예쁘게 쓰는 게 아니라, 빠진 거 채우는 거. 지금도 양식은 검색한다 여전히 새로운 문서 쓸 때는 검색한다. "XX 문서 양식", "XX 템플릿".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양식을 찾으면, 10분 본다. 구조만 파악한다. 그리고 닫는다. 내 노션을 열고, 챕터만 따라 만든다. 그리고 쓴다. 일단 쓴다. 첫 문장이 이상해도 쓴다. 두 번째 문장이 연결 안 돼도 쓴다. 1시간 쓰고 나면, 뭐가 이상한지 보인다. 그때 고친다. 양식은 출발점이다. 도착점이 아니다. 주니어 기획자의 함정 주니어일수록 양식에 집착한다. 나도 그랬다. "양식만 잘 따라 하면, 좋은 기획서가 나올 거야." 틀렸다. 좋은 양식에 빈 내용을 채우면, 그냥 빈 문서다. 나쁜 양식에 꽉 찬 내용을 채우면, 그게 기획서다. 사수는 양식을 안 본다. 내용을 본다. 개발자는 양식을 안 본다. 요구사항을 본다. "PRD 양식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네가 편한 대로 써. 내용만 빠뜨리지 마."라고 답한다. 30분의 기획, 2시간의 다듬기 요즘 내 방식이다.양식 검색 10분 (구조만 봄) 생각 정리 30분 (뭘 만들지, 왜 만들지, 어떻게 동작하는지) 초안 작성 30분 (일단 다 씀, 이상해도 씀) 빠진 거 채우기 1시간 (데이터, 예외 케이스, 일정) 다듬기 30분 (문장 정리, 순서 조정)총 2시간 반. 예전엔 양식 찾는 데 4시간 쓰고, 쓰는 데 30분 썼다. 지금은 쓰는 데 2시간 쓰고, 양식은 10분 본다. 생산성이 4배 올랐다. 완벽한 양식은 없다 회사마다 다르다. 팀마다 다르다. 사수마다 다르다. A 팀은 BRD 먼저 쓴다. B 팀은 PRD만 쓴다. C 팀은 화면정의서만 있으면 된다. "정답 양식"을 찾으려고 하루를 쓰지 마라. 우리 팀 선배 기획서 3개만 열어봐라. 공통점을 찾아라. 그게 우리 팀 양식이다. 양식보다 중요한 것 질문에 답하는 거다.왜 만드나? (배경, 목적) 뭘 만드나? (요구사항, 기능) 어떻게 동작하나? (화면정의서, 플로우) 언제 만드나? (일정) 누가 만드나? (담당자)이 5개만 답하면, 그게 기획서다. 챕터 제목이 "배경"이든 "Background"든, "문제 정의"든 상관없다. "왜 만드는지" 설명되면 된다. 1년 차의 나에게 양식 검색 그만해. 하루 종일 템플릿 보지 마. 그 시간에 생각해. "이 기능이 왜 필요한가?" "사용자가 어떻게 쓸까?" "개발자가 뭘 알아야 할까?" 그리고 써. 일단 써. 못나도 써. 이상해도 써. 양식은 나중에 맞춰도 된다. 내용은 지금 채워야 한다.양식은 껍데기고, 생각이 내용이다. 껍데기 고르는 데 하루 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