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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 27 Dec, 2025
기획서는 100% 완성된 후에 보낼까, 80% 상태로 피드백받을까
기획서는 100% 완성된 후에 보낼까, 80% 상태로 피드백받을까 어제 밤 11시까지 붙잡았다 기획서 하나 쓰는데 사흘째다. 화면 정의서 8장. 플로우차트 3개. 요구사항 정리 2페이지. 사수한테 보여주려고 만들었다. 근데 계속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조금만 더"를 10번 했다. 월요일 오전 회의에서 사수가 말했다. "신기획님, 로그인 플로우 기획서 목요일까지 부탁해요." 오늘이 수요일 저녁이다. 내일 아침에 보내야 한다. 근데 자꾸 손이 간다. '이 케이스는 빠진 거 아니야?', '여기 설명이 부족한데?', '개발자가 이거 보고 이해할까?' 11시에 저장하고 껐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서도 생각난다. '아, 에러 케이스 하나 더 추가해야 하는데.'오늘 아침, 결국 못 보냈다 9시 50분 출근. 10시까지 보내려고 했다. 파일 열었다. 다시 읽어봤다. 또 이상하다. '여기 화면 전환 로직이 명확하지 않아.' 수정했다. 30분 지났다. '버튼 라벨 정의가 애매해.' 또 고쳤다. 1시간 지났다. 사수가 슬랙 보냈다. "신기획님, 기획서 진행 어때요?" 손이 떨렸다. "거의 다 됐습니다. 오후에 보내드리겠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90%는 됐다. 근데 그 10%가 신경 쓰인다. 점심시간에도 노트북 켜놨다. 김치찌개 먹으면서 화면 정의서 보고 있었다. 동료가 물었다. "뭐 그렇게 봐?" "아니, 그냥요." 오후 3시. 여전히 못 보냈다. 케이스 하나 더 추가했다. 플로우차트 화살표 하나 수정했다. 문구 다듬었다. 이제 95%다. 근데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1주일 전엔 반대였다 지난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회원가입 플로우 기획서. 그때는 60% 상태로 사수한테 보냈다. "일단 방향성 맞는지 봐주세요." 사수가 30분 만에 답했다. "전체적으로 괜찮은데, 소셜 로그인 케이스가 빠졌어요. 그리고 이용약관 동의 플로우는 법무팀 검토 먼저 받아야 해요." 멘붕왔다. '아, 이것도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날 야근했다. 처음부터 다시 짰다. 결국 이틀 더 걸렸다. 그래서 이번엔 다짐했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보내자.' 지적받을 부분 없게. 한 번에 OK 받게. 근데 지금 보니까, 그것도 문제다. 완벽하게 만들려다가 시간만 가고 있다.선배 기획자한테 물어봤다 퇴근 전에 팀 선배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2년차 선배다. 나보다 1년 먼저 입사했다. "선배님, 기획서 보낼 때 얼마나 완성하고 보내세요?" 선배가 웃었다. "왜, 또 사수한테 보내기 무서워?" 들켰다. "네... 계속 부족한 것 같아서요." 선배가 모니터 돌렸다. 본인이 작성 중인 기획서를 보여줬다. 빨간 글씨로 'TODO' 가 5개나 있었다. "나도 이 상태로 내일 검토 요청할 거야. 70% 정도?" "네? 근데 TODO가..." "그래서 보내는 거지. 혼자 고민하면 일주일 걸려. 그런데 이 상태로 피드백받으면 하루 만에 방향 잡혀." 선배가 덧붙였다. "신기획 씨는 100% 만들려고 하잖아. 근데 그 100%가 진짜 100%인지는 어떻게 알아? 사수가 '이거 방향 아닌데' 하면 그 100%가 0%가 되는 거야." 가슴에 꽂혔다. 그래서 오늘 6시에 보냈다 선배 말 듣고 결심했다. 85% 상태로 보내기로. 완벽하지 않아도 방향성은 잡혔으니까. 파일 열었다. TODO 주석 두 개 남겨뒀다. [TODO] 에러 케이스 A-3 구체화 필요 [TODO] 개발 우선순위 협의 필요슬랙 보냈다. "사수님, 로그인 플로우 기획서 공유드립니다. 아직 TODO 남아있는데, 전체 방향성 먼저 검토 부탁드려요." 떨렸다. '미완성 보내는 거 맞나.' 근데 보냈다. 30분 뒤 답장 왔다. "확인했어요. 전체적으로 잘 정리됐네요. 다만 OAuth 플로우가 빠진 것 같은데, 백엔드 개발자분이랑 먼저 논의하고 추가해주세요. TODO 부분은 내일 아침에 같이 봐요." 10초 만에 방향 잡혔다. OAuth. 생각도 못 했다. 만약 내가 혼자 이틀 더 붙잡았으면 어땠을까. OAuth 없이 '완벽한' 기획서 만들었을 것이다. 쓸모없는 완벽.다음날, 아침 미팅 사수랑 15분 미팅. 어제 보낸 기획서 리뷰. "여기 TODO 표시해둔 부분 좋았어요. 뭘 고민 중인지 알 수 있어서." 칭찬이었다. 미완성으로 보낸 게 칭찬받았다. "신기획 씨, 기획서는 대화 도구예요. 혼자 완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팀이랑 같이 완성하는 거죠. 80% 상태로 빨리 공유하는 게, 혼자 100% 만들려고 일주일 쓰는 것보다 낫습니다." 노트에 받아적었다. "기획서 = 대화 도구" "다음부턴 초안 단계에서 한번, 중간에 한번, 더 자주 보여주세요. 방향 틀어지기 전에 잡아줄게요." 고개 끄덕였다. 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서 내가 정한 기준 혼자 고민 끝에 기준을 만들었다. 나만의 피드백 타이밍. 30% - 방향 확인 요구사항 정리하고, 큰 플로우 스케치했을 때. "이 방향 맞나요?" 물어보기. 여기서 틀리면 전체가 틀린다. 70% - 구조 검토 화면 정의서 뼈대 잡고, 주요 케이스 정리했을 때. "이렇게 가는데 빠진 거 없나요?" 구멍 찾기. 90% - 최종 검수 디테일 다듬고, 문구 정리하고, 개발 전달 직전. "이제 괜찮나요?" 마지막 확인. 처음엔 70%가 불안했다. '더 완성하고 보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지금은 70%가 적기다. 혼자 90%까지 가면 이미 늦다. 완벽주의는 미루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제 새 기획서 시작했다 결제 플로우 기획서. 이번엔 다르게 했다.1일차: 요구사항 정리, 플로우 스케치 (30%) 1일차 오후: 사수한테 공유, "방향 이거 맞나요?" 2일차: 피드백 반영, 화면 정의서 작성 (70%) 2일차 저녁: 다시 공유, "구조 검토 부탁드립니다" 3일차: 디테일 보완, 개발팀 공유 준비 (90%)3일 만에 끝났다. 이전 같았으면 일주일 걸렸을 일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100%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30%, 70%, 90% 피드백이 쌓여서 100%가 된다. 완성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완벽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같이 채워가는 거다.
- 21 Dec, 2025
인턴 기획자였던 나, 2년차에서 멈춘 느낌
인턴 기획자였던 나, 2년차에서 멈춘 느낌 1년차는 달랐다 입사 첫날을 기억한다. 사수가 건넨 기획서를 열었다. 아무것도 몰랐다. "와이어프레임", "유저플로우", "MVP". 단어 하나하나가 외계어였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매일 배울 게 있었다. 사수 기획서를 복사해서 내 노션에 붙여놓고 구조를 분석했다. "아, 이렇게 페이지를 나누는구나." "요구사항을 이런 식으로 정리하네." 3개월 차에는 간단한 화면 정의서를 혼자 썼다. 사수가 "잘했어"라고 했다. 그날 저녁 여자친구한테 자랑했다. "나 오늘 칭찬받았어." 6개월 차. 회의에서 처음으로 의견을 냈다. "이 버튼 위치, 사용자 동선상 여기가 나을 것 같습니다." 떨렸지만 말했다. 개발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네요."9개월 차에는 작은 기능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했다. 요구사항 정리부터 화면 정의서, 개발 QA까지. 내가 기획한 게 실제 서비스에 들어갔다. 앱을 켜서 그 화면을 봤다. 뿌듯했다. 1년 차 연말. 연봉 재계약 면담에서 대표가 말했다. "많이 성장했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합니다."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혼자 마시면서 생각했다. "나 잘하고 있네." 그때는 몰랐다. 이게 끝이라는 걸. 2년차부터 뭔가 이상했다 2년 차 3개월. 오늘도 화면 정의서를 쓴다. 1년 전에 쓴 것과 똑같은 구조다. 로그인 화면, 회원가입 화면, 메인 화면. 버튼 위치만 조금 다르다. 사수가 말한다. "이번엔 결제 플로우 기획해봐." 지난번에 했던 거랑 거의 같다. 템플릿 복사해서 내용만 바꿨다. 2시간 걸렸다. 1년 전 같으면 이틀은 걸렸을 일이다. "빨라졌네"라고 생각했다. 근데 왜 기분이 안 좋을까. 회의 시간. PM이 묻는다. "이 기능, 어떻게 생각해?" 1년 전 같으면 떨면서 대답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나온다. "UI는 기존 패턴 따라가고요, 개발 공수 고려하면 이렇게 하는 게 낫습니다." 정답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내 입에서 나온 말인데 내가 놀라지 않는다. 1년 전에 사수가 하던 말이다. 내가 따라한 거다.저녁. 노션 정리하다가 1년 전 내가 쓴 글을 봤다. "오늘 처음으로 API 명세서를 이해했다. 어렵지만 재밌다." 지금은? API 명세서 보면 그냥 안다. 어떻게 동작할지, 어디서 막힐지. 근데 재밌지 않다. 내가 한계에 도달한 건가 주말. 여자친구가 묻는다. "요즘 힘들어 보여."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힘든 건 아니다. 야근도 별로 없고, 사수도 잘해준다. 그냥 멈춘 느낌이다. 토이 프로젝트 기획서를 켰다. 2주째 첫 페이지에서 못 나가고 있다. "뭘 기획하지?" 아이디어가 안 난다. 1년 전에는 아이디어가 넘쳤는데. 아니다. 정확히는 아이디어가 나오다가 지워진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미 있는 서비스인데." "이렇게 하면 개발이 너무 오래 걸릴 텐데." 머릿속에서 사수 목소리가 들린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지." 맞는 말이다. 근데 이게 맞나. 링크드인을 켰다. 같이 입사한 동기가 글을 올렸다. "새로운 프로젝트 런칭했습니다!" 사진에 그가 웃고 있다. 팀원들과 함께. 나는? 오늘 뭐 했지. 화면 정의서 3개 썼다. 다 비슷한 내용이다. 선배들한테 물어봤다 용기 내서 사수한테 물었다. "저 요즘 성장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사수가 웃는다. "다들 그래. 2년차 때 한 번씩 겪어." 그리고 말한다. "근데 지금이 중요해. 기초를 다지는 시기거든." 기초? 1년 동안 다진 거 아닌가. 더 다져야 하나. 다른 팀 선배한테도 물었다. 5년차 기획자다. "저도 그랬어요. 근데 3년차 되니까 또 달라지더라고요." 3년차?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퇴근길에 유튜브를 봤다. "주니어 기획자 성장 로드맵" 영상이다. 댓글을 읽었다. "저도 2년차인데 공감돼요." "3년차도 마찬가지입니다." "5년차인데 아직도..." 아, 다들 그렇구나. 근데 위로가 안 된다.반복이 나쁜 건 아니다 어제 회사에서 큰 버그가 났다. 결제 기능이 멈췄다. 개발팀이 난리다. PM이 회의실로 불렀다. "원인 파악하고 대응 방안 기획해줘." 1년 전 같으면 패닉했을 것이다. 근데 지금은 알고 있다. 뭘 해야 하는지. 30분 만에 문서를 만들었다. 버그 발생 시나리오, 영향 범위, 임시 조치, 근본 해결 방안. 개발팀장이 말한다. "역시 신기획씨는 빨라." 그날 저녁 생각했다. 내가 빨라진 이유는? 반복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반복이 나쁜 건 아니구나. 문제는 반복만 하고 있다는 거다. 같은 레벨의 일만 계속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1년 전에 배운 걸 2년째 쓰고 있다. 새로 배운 건? 딱히 없다. 정체기가 아니라 안전지대였다 주말에 도서관에 갔다. 기획 책을 빌렸다. 『린 스타트업』, 『인스파이어드』. 1년 전에 샀다가 반만 읽고 덮은 책들이다. 다시 펼쳤다. 이번엔 다르게 읽혔다. "아, 우리 회사에서 이거 안 하고 있네." "이 방법론, 우리한테 필요한데." 근데 회사에서 제안할 수 있을까? 사수가 "그건 너무 이상적이야"라고 하면? PM이 "시간 없어"라고 하면? 결국 안 한다. 책을 덮는다. "나중에 해야지." 1년 전에도 그렇게 말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노션을 켰다. 할 일 리스트가 똑같다. "화면 정의서 작성", "회의록 정리", "개발 QA".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클릭, 타이핑, 저장. 2시간 만에 끝났다. 효율적이다. 근데 이게 성장인가? 깨달았다. 나는 정체기에 있는 게 아니다. 안전지대에 있는 거다. 실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수한테 혼나지 않는 선에서. 편하게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있다. 작은 불편함을 선택하기 화요일. 회의에서 PM이 물었다. "이 기능, 어떻게 할까?" 평소 같으면 안전한 답을 했을 것이다. "기존 방식대로 하는 게 낫습니다." 근데 이번엔 다르게 말했다.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떨렸다. PM이 묻는다. "어떤 방식?" 준비한 게 없었다. 주말에 본 책 내용을 떠올렸다. "A/B 테스트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가지 버전을 만들어서 사용자 반응을 보는 거죠." 개발자가 말한다. "공수가 두 배 드는데요." 예상한 반응이다. 근데 물러서지 않았다. "초기 공수는 들지만, 데이터 기반으로 결정할 수 있잖아요. 나중에 다시 뒤집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번 해보자." 회의가 끝났다. 심장이 뛴다. 1년 만이다. 이런 느낌. 퇴근 후 집에 와서 A/B 테스트 방법론을 공부했다. 모르는 게 많다. 어렵다. 근데 재밌다. 이거다. 이 느낌. 1년 전에 느꼈던 거. 멈춘 게 아니라 쉬고 있었던 거다 목요일. A/B 테스트 기획안을 만들었다. 처음 하는 거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3일 동안 매일 야근했다. 사수한테 보여줬다. 피드백이 많이 나왔다. "이 부분은 측정이 어려울 것 같은데." "여기는 좀 더 구체적으로 써야 해." 1년 전 같으면 기죽었을 것이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알겠습니다. 수정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수정했다. 금요일. 수정한 기획안을 다시 보여줬다. 사수가 말한다. "많이 좋아졌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개발팀 회의. 내가 발표했다. "이번 기능은 A/B 테스트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화면을 넘기면서 설명했다. 개발자들이 질문한다. 대답한다. 모르는 건 "확인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 회의 후 개발팀장이 말했다. "신기획씨, 요즘 달라진 것 같아요." 뭐가 달라졌을까. 내가 봐도 모르겠다. 주말. 여자친구가 말한다. "요즘 표정이 좋아졌어." 그래? "응, 한동안 우울해 보이더니." 그날 밤 일기를 썼다. "2년차에서 멈춘 줄 알았다. 근데 멈춘 게 아니었다. 쉬고 있었던 거다. 다음 단계로 가기 전에." 2년차는 끝이 아니다 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할 일 리스트를 봤다. "A/B 테스트 결과 분석", "다음 실험 설계". 새로운 일이다. 어렵다. 모르는 게 많다. SQL 공부해야 한다. 통계도 봐야 한다. 근데 겁나지 않는다. 1년 전에도 다 몰랐다. 그래도 배웠다. 이번에도 배우면 된다. 사수가 말한다. "신기획씨, 이번 분기 목표 얘기 좀 하자." 면담실로 갔다. 사수가 묻는다. "어떤 걸 배우고 싶어?" 1년 전 같으면 "시키는 거 하겠습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근데 이번엔 준비했다. "데이터 분석 공부하고 싶어요. 그리고 실험 설계 방법론도요." 사수가 웃는다. "좋아. 지원해줄게." 퇴근길. 지하철에서 링크드인을 켰다. 동기가 또 글을 올렸다. 부럽지 않았다. 나도 내 속도로 가고 있으니까. 집에 와서 노트북을 켰다. SQL 강의를 재생했다. 어렵다. 근데 할 만하다. 2년 차는 끝이 아니었다. 중간 지점이었다. 1년 동안 배운 걸 내 것으로 만드는 시기. 그리고 다음을 준비하는 시기. 멈춘 게 아니라 숨을 고르고 있었던 거다. 다음 언덕을 오르기 전에.2년차 정체기는 끝이 아니라 쉼표였다. 이제 다음 문장을 쓸 시간이다.
- 12 Dec, 2025
년차별로 보는 기획자의 성장 단계, 나는 어디쯤?
2년차인데 1.5년차 같은 기분 오늘 사수가 물었다. "2년 됐는데 아직도 이런 거 물어봐?" 뭘 물어봤냐면. PRD에 '비즈니스 임팩트' 써야 하는데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였다. 사수 표정이 묘했다. 실망한 것도 아니고, 화난 것도 아니고. 그냥 "아 그래?" 하는 느낌. 집에 와서 계속 생각했다. 나는 2년차다. 근데 왜 1.5년차 같지. 아니 솔직히 1년차 같을 때도 있다. 검색했다. "기획자 년차별 역량". 나왔다. 1년차는 이거, 2년차는 저거, 3년차는 그거. 표 깔끔하게 정리된 블로그 글 많더라. 읽으면서 식은땀 났다.1년차: 기획서 양식이 뭔지 모르던 시절 입사 첫날. 사수가 노션 링크 하나 보냈다. "여기 템플릿 있어. 이거 보고 써봐." 템플릿 열었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배경 및 목적 AS-IS / TO-BE 요구사항 정의 화면 정의서 플로우 차트 비기능 요구사항"비기능 요구사항이 뭐지?" 검색했다. 나왔다. 성능, 보안, 확장성. 그래서 뭘 어떻게 쓰라고? 그때는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 회의록도 못 썼다. 누가 뭐라고 했는지는 받아적는데, 이게 중요한 건지 아닌지 몰라서 다 적었다. A4 5장. 사수가 봤다. "이거 다 필요한 거야?" 몰랐다. 그냥 다 적었다. 1년차 때 배운 것:기획서는 양식이 있다 회의록은 결론 위주로 쓴다 개발자한테 물어보기 전에 검색부터 "확인해보겠습니다" 만능 문장근데 이게 다였다. 1년 내내.2년차: 논리는 알겠는데 설득은 어려움 지금. 2년 3개월. 이제 기획서는 쓴다. 양식도 안다. 화면 정의서도 그린다. 피그마로 와이어프레임도 만든다. 근데. 회의 때 개발팀장이 물었다. "이거 왜 이렇게 기획했어요?" "...사용자가 편할 것 같아서요." "데이터 있어요?" 없다. "그럼 개발 공수는 고려했어요?" 안 했다. 팀장이 웃었다. 비웃는 게 아니라 그냥 웃었다. "다음엔 먼저 물어봐요." 창피했다. 2년차 되면 달라질 줄 알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아직도 "그냥 좋을 것 같아서"에서 못 벗어났다. 블로그 글들 보면 2년차는 이래야 한대: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이해관계자 설득 우선순위 판단 대안 제시나는 4개 중에 0.5개 한다. 우선순위는 좀 안다. 급한 거 먼저. 그 정도. 사수가 말했다. "넌 손은 빠른데 머리가 안 따라와." 맞는 말이다.3년차는 어떤 느낌일까 3년차 선배가 있다. 다른 팀. 걔는 다르다. 회의 때 개발자가 "이거 안 돼요" 하면 바로 대안 낸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요?" 개발자가 고개 끄덕인다. 데이터도 들고 온다. "지난달 전환율이 3.2%인데, 이거 개선하면 4% 갈 것 같아요." 숫자로 말한다. 나는 숫자가 없다. "좀 나아질 것 같아요." 이게 끝이다. 3년차 선배한테 물어봤다. "어떻게 그렇게 해요?" "음... 많이 깨져봐서?" 도움 안 되는 답변. "근데 넌 2년차치고 잘하는 편이야. 나 2년차 땐 더 못했어." 위로인지 진심인지 모르겠다. 검색한 3년차 역량:프로젝트 리딩 주니어 멘토링 전략 수립 크로스펑셔널 커뮤니케이션1년 뒤에 저거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지금 어디쯤인가 엑셀 켰다. 표 만들었다. 년차별 역량 체크리스트. 1년차 항목: 기획서 양식 이해 회의록 작성 화면 정의서 작성 기본 커뮤니케이션2년차 항목:[△] 데이터 분석 (SQL 아직 어려움) [△] 논리적 설득 (가끔 됨) 와이어프레임 제작 [△] 이해관계자 조율 (사수 도움 필요) 우선순위 판단 (혼자 못함) 프로젝트 단독 진행절반. 2년차인데 1.75년차 정도. 근데 이게 문제인가? 사수가 말했다. "성장은 계단이 아니라 곡선이야."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요즘 알 것 같다. 1년 차에서 2년 차로 딱 넘어가는 게 아니다. 어떤 날은 2.5년차처럼 일하고, 어떤 날은 0.5년차처럼 무너진다. 어제 화면 정의서 30분 만에 끝냈다. 사수가 "수정사항 없네" 했다. 3년차 느낌. 오늘 개발자한테 "이거 가능해요?" 물어봤다. "그 정도는 직접 판단해봐요." 돌아왔다. 1년차 느낌. 곡선이 맞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블로그 글 보면 답 나온다. "꾸준히 성장하세요", "데이터 공부하세요", "멘토 찾으세요". 맞는 말이다. 근데 위로는 안 된다. 나는 그냥 2년차다. 1.5년차 같기도 하고, 2년차 같기도 하고, 가끔 3년차 흉내도 낸다. 내일 출근하면 또 사수한테 물어볼 것이다. "이거 어떻게 써요?" 쪽팔리다. 근데 뭐 어쩌나. 모르는 걸. 1년 뒤에는 3년차 선배처럼 될까? 모르겠다. 근데 1년 전보단 나아졌다. 그건 확실하다. 기획서 쓸 때 양식 검색 안 한다. 머릿속에 있다. 회의 때 받아적기만 하던 나는 이제 질문도 한다. 가끔. 곡선이 맞다. 계단 아니다. 오늘은 1.8년차 기분. 내일은 2.1년차일지도. 그냥 간다. 출근한다. 기획서 쓴다. 깨진다. 배운다. 언젠간 3년차 되겠지.2년차인데 1.5년차 같아도 괜찮다. 곡선이니까.
- 04 Dec, 2025
유튜브 PM 강의는 밤 10시, 실무 적용은 언제?
밤 10시 30분 퇴근하고 집에 왔다. 8시. 씻고 밥 먹으니 9시 반. 노트북 켰다. 유튜브 들어갔다.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건너뛴다. 매일 보는 채널이다. 오늘 영상 제목: "주니어 기획자가 꼭 알아야 할 와이어프레임 작성법" 재생한다. 12분짜리다. 강사가 말한다. "와이어프레임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입니다. 디자이너, 개발자와의 약속이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커뮤니케이션 도구. 노션에 적는다. "와이어프레임 = 커뮤니케이션"오전 10시 출근했다. 사수가 부른다. "어제 말한 회원가입 화면, 그려봤어?" 그렸다. 3시간 걸렸다. 피그마 켜서 네모 그리고, 버튼 넣고, 텍스트 필드 배치했다. 사수가 본다. 5초. "이게 뭐야?" 뭐긴. 와이어프레임이다. 어젯밤에 본 영상대로 했다. "약관 동의는 어디 있어? 소셜 로그인은? 에러 케이스는?" 약관...? 강의에서 안 알려줬는데. 아니다. 알려줬다. '예외 처리를 생각하세요'라고 했다. 근데 뭘 어떻게. "다시 해와." 알겠습니다.점심시간 혼자 밥 먹는다. 유튜브 켠다. '기획자 예외 처리 방법' 검색했다. 영상이 나온다. "예외 케이스 정리는 이렇게 합니다" 본다.성공 케이스 먼저 실패 케이스 나열 엣지 케이스 고려엣지 케이스가 뭐지. 찾아본다. '극단적 상황' 아. 그거. 밥 먹으면서 본다. 12분 영상 두 개. 이해했다. 이론적으로는. 1시 10분. 사무실 들어간다. 컴퓨터 앞에 앉는다. 노션 켠다. '회원가입 예외 케이스' 쓴다.이메일 형식 오류 비밀번호 불일치 중복 가입세 개 썼다. 더 있을까? 모르겠다. 강의에서는 쉬워 보였는데. 오후 3시 개발자가 왔다. "이거 API 어떻게 쏴요?" API? 강의에서 들었다. '프론트와 백엔드의 약속' 그게 뭔데. "제가... 확인해보고 알려드릴게요." 개발자가 간다. 유튜브 검색한다. 'API 명세서 작성법' 영상이 나온다. 15분짜리. 본다. endpoint, method, request, response 단어는 안다. 강의에서 100번 들었다. 근데 우리 서비스에 어떻게 적용하지. 회원가입 API는 뭐지. POST /user/signup? 맞나? 검색한다. '회원가입 API 예시' 복사한다. 우리 서비스 용어로 바꾼다. 이게 맞나. 모르겠다. 사수한테 물어볼까. 또 '이것도 몰라?' 소리 들을까. 혼자 끙끙댄다.퇴근 후 10시 집이다. 노트북 켰다. 유튜브 켠다. '주니어 기획자가 알아야 할 API 기초' 본다. "API는 프론트엔드와 백엔드의 약속입니다." 안다. 오늘 오후에 들었다. "request body에 필요한 값을 정의하세요." 안다. 영상 4개 봤다. 근데 오늘 나는 못 했다. 왜지. 영상을 멈춘다. 강의는 이해, 실무는 멘붕 강의는 친절하다. 예시가 있다. 템플릿이 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실무는 다르다. 예시가 없다. 우리 서비스 상황이 있다. '이거 어떻게 해요?' 강의: "사용자 시나리오를 그려보세요" 실무: "이 시나리오에서 이탈률이 70%인데요?" 강의: "와이어프레임은 심플하게" 실무: "여기 배너 3개 더 넣어주세요" 강의: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결정" 실무: "대표님이 파란색이 좋대요" 강의는 정답이 있다. 실무는 정답이 없다. 강의는 30분이면 끝난다. 실무는 3일 걸려도 안 끝난다. 매일 밤 강의를 본다. 매일 낮 실무는 막힌다. 이게 뭐지. 10%도 못 쓰는 이유 강의 내용을 노션에 정리했다. 페이지가 50개다.와이어프레임 작성법 PRD 템플릿 API 명세서 가이드 사용자 시나리오 그리기 AB 테스트 설계 SQL 기초다 봤다. 다 적었다. 근데 써먹은 건. 회원가입 화면 하나 그리는데 3번 갈아엎었다. API 명세서는 사수가 다시 썼다. SQL은 쿼리 하나 못 짠다. 10%도 못 쓴다. 아니, 5%다. 왜지. 생각해봤다. 강의는 '이론'이다. 실무는 '맥락'이다. 강의: "버튼은 사용자 동선을 고려해서 배치하세요" 실무: "우리 사용자 평균 연령 55세, 버튼 크기 얼마로?" 강의에서는 '원칙'을 알려준다. 실무에서는 '상황'에 맞춰야 한다. 원칙은 알겠는데. 상황 판단을 못 한다. 강의 100개 봐도 안 되는 이유다. 손가락으로 나오려면 오늘 사수가 말했다. "강의 그만 보고 그냥 해봐." 뭘. "틀려도 돼. 일단 네가 생각한 대로 해봐." 그게 무섭다. 틀리면 시간 낭비다. 다시 해야 한다. "그래도 네가 한 번 틀려봐야 다음에 안 틀려." 그런가. 강의는 답을 알려준다. 실무는 내가 답을 만든다. 강의는 '이렇게 하세요'다. 실무는 '이렇게 해봤는데 어때요?'다. 강의는 정답 맞히기. 실무는 오답 줄이기. 강의 보는 시간: 하루 1시간 실무 하는 시간: 하루 8시간 8시간에서 배운다. 1시간은 참고만 한다. 손가락으로 나오려면. 손가락을 움직여야 한다. 강의는 머리로 보는 거다. 실무는 손으로 하는 거다. 내일 할 것 강의는 본다. 근데 방법을 바꾼다. 예전:강의 본다 노션에 정리한다 '이해했다' 생각한다 끝내일부터:강의 본다 당장 실무에 적용할 부분 하나만 고른다 내일 출근해서 바로 써본다 틀리면 수정한다예시. 오늘 본 강의: "와이어프레임 레이아웃 패턴" 내일 쓸 것: F 패턴 적용해서 메인 화면 다시 그리기 틀려도 된다. 사수가 '이건 아니다' 해도 된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 강의는 연습문제집이다. 실무는 실전 시험이다. 연습문제만 푼다고 실전을 못 푸는 건 아니다. 근데 실전을 안 보면 영원히 못 푼다. 밤 10시 강의. 내일 10시 실무. 12시간 차이. 이 간격을 줄인다. 배운 날 써본다. 손가락으로 나올 때까지. 매일.강의는 계속 본다. 근데 보기만 하지 않는다. 내일 당장 쓸 한 가지만 고른다. 틀려도 된다. 안 하는 것보다 100배 낫다.
- 02 Dec, 2025
사수가 '이거 왜 이렇게 했어?'라고 물었을 때의 얼어버리는 심정
사수의 한마디, 그리고 3시간의 공포 화면 정의서를 제출했다. 월요일 오전 10시. 사수에게 슬랙으로 링크를 보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라고 정중하게. 다섯 번 읽고 보냈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났다. 오후 1시. 사수가 콜을 잡았다. 1:1 미팅 15분. 간단한 거라고 했다. 나는 노트북을 들었다. 펜을 들었다. 준비됐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화면을 띄웠다. 내가 설계한 화면. 로그인 후 온보딩 플로우. 3개 스텝. 심플한 구조다. 나는 자랑스러웠다. 사수가 말했다. "이거 왜 이렇게 했어?"끝이다. 내 논리는 여기서 끝난다. 그 순간 뇌가 정지했다. 평소처럼 대답하려고 했는데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우스를 집었다. 놓았다. 다시 집었다. "어... 그게..." "3개 스텝이 필요해? 2개는 안 돼?" 아. 맞다. 2개로 할 수 있겠는데? 근데 왜 3개로 했더라? 나는 뭘 생각하고 있었나?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망했다. 이건 확인하는 게 아니다. 내가 설계한 건데 내가 왜 했는지 모르고 있다. 이게 기획자인가? 이건 그냥 따라 하기인가? 사수는 계속했다. "그리고 여기 입력 폼 필드가 너무 많아. 유저가 이 단계에서 입력해야 할 것만 해. 나머지는 다음 단계에서." "네... 알겠습니다..." "숫자로 정렬한 이유가 있어? 아니면 그냥 한 건데?" 그냥 한 거다. 다들 이렇게 하는 거 같았다. 선배 기획서를 봤고 그렇게 돼 있어서. 근데 왜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다. "제가...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갔다. 15분이 30분이 됐다. 내 답변은 계속 같았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마지막에 사수가 웃었다. 좋은 의미의 웃음은 아니었다. 그냥... 답답한 웃음. 선배가 느끼는 그 감정이 마이크를 통해 전해졌다. '또 설명해야 하나.'온보딩 화면의 비극 내가 뭘 잘못했는지 천천히 깨달았다. 온보딩은 3개 스텝이었다. 단계 1: 휴대폰 번호 입력. 단계 2: 인증 번호 입력 + 이름 입력 + 생년월일 입력. 단계 3: 약관 동의. 왜 3개? 노션에 템플릿이 3단계 구조로 돼 있었다. 난 그걸 복사했다. 생각을 안 했다. 근데 사수가 묻는 건 간단했다. "왜 2개 아닌데 3개야?" 좋은 질문이다. 유저의 입장에서는 3번 클릭하는 게 맞나? 아니면 2번? 아니면 1번? 이걸 내가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내가 그 시점에서 해야 할 일:왜 3개를 설정했는지 논리를 대기 논리가 없으면 인정하기 대신 "이렇게 개선해보겠습니다"라는 액션 제시하기나는 1번을 못 했다. 논리가 없었으니까. 2번도 못 했다. 인정이 무서웠다. 그냥 3번을 했다. "수정하겠습니다." 근데 이게 뭐 하는 직업인가? 남 말에 따라 수정하는 기계? 그건 기획자가 아니라 그냥 입력자다.같은 날 오후 5시, 화장실에서 나는 개의 기획서를 다시 열었다. 화장실이었다. 사무실에서는 너무 부끄러웠다. 온보딩 3단계. 정말 3단계가 필요한가? 사용자 관점:휴대폰 인증까지는 필수 추가 정보 입력은... 지금 꼭 필요한가?개발자 관점:3개 페이지는 3배의 상태 관리 데이터 저장 로직이 복잡해짐 이탈율이 높아질 수 있음디자이너 관점:3번 디자인해야 함 애니메이션 처리내가 이 걸 미리 생각했으면? 기획서에 썼을 텐데. "온보딩을 2단계로 설계한 이유: 1) 초기 진입 장벽 최소화 2) 개발 복잡도 감소 3) 유저 이탈율 예상 감소" 이 정도면 대답이다. 토론할 수 있는 기초. 근데 나는 "왜냐하면 그렇게 봤으니까"라고만 했다. 이건 기획이 아니다. 배낭이다. 화장실에서 30분을 있었다.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나는 계속 온보딩 플로우를 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헤치고 있었다. 2단계가 맞을 것 같았다. 근데 정말 맞나? 혹시 1단계는? 아니면 4단계? 그걸 판단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한데 난 데이터가 없다. 데이터가 없으면 논리가 약한데 논리가 약하면 설득이 안 된다. 그래서 난 항상 "확인해보겠습니다"만 한다.퇴근 후, 유튜브 강의 시간 집에 왔다. 라면을 끓였다. 먹으면서 PM 유튜브를 켰다. "기획서 작성법 - 논리적 사고" 40분짜리 강의. 보기 시작했다. 강사는 말했다. "모든 설계 결정에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비즈니스, 유저, 기술 중 하나 이상에서 나와야 합니다." 내 온보딩 3단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템플릿이었다. 강사는 계속했다. "만약 사수가 '왜?'라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없다면 그 설계는 설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사입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난 계속 복사하고 있었다. 기획서 템플릿 찾아서 구조 따라 하고. 선배 화면 보고 비슷하게 하고. 피그마 피드백 받고 수정하고. 기획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기획자라고 하고 있었다.다음날 아침, 사수 앞에서 화요일. 10시. 사수가 또 미팅을 잡았다. 나는 밤새 온보딩을 다시 설계했다. 2단계로. 1단계에서는 휴대폰 + 인증 + 이름. 2단계에서는 약관 동의. 생년월일은 나중에. 왜? 이유가 있었다.초기 완료 시간 1분대로 단축 (유저 진입 용이) 개발 상태 관리 단순화 (개발자 팀 피드백 반영) 추가 정보는 프로필 완성 때 이용 가능 (선택 입력으로 변경)정도면 충분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생각이 있었다. 사수가 물었다. "어제 피드백 반영했어?" "네. 2단계로 변경했습니다. 이유는..." 처음이었다. 내 설계 이유를 말하는 게. 떨렸다. 사수는 들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게 맞는 접근이야." 4글자. "좋아. 이게 맞는 접근이야." 그게 얼마나 큰 말씀인지 난 알았다. 어제는 "확인해보겠습니다"만 했는데 오늘은 "이유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 차이가 크다. "근데 생년월일을 왜 빼?" 또 물었다. 근데 이번엔 답이 있었다. "초기 가입 과정에 필수 정보가 아니어서..." "맞아. 계속 이렇게 생각해."2주 후 2주가 지났다. 기획서를 쓸 때 이제 먼저 생각한다. "이 화면이 왜 필요한가?" "유저는 뭘 원하는가?" "개발자는 뭘 쉽게 하고 싶어 하나?" "디자이너는 뭘 명확히 하고 싶어 하나?" 여전히 완벽하진 않다. 데이터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다. 근데 그래도 다르다. 사수가 "왜 이렇게 했어?"라고 물었을 때 이제 얼어버리지 않는다. 틀릴 수도 있지만 대답이 있다. 어제는 내가 설계한 결제 플로우를 제시했다. 사수가 물었다. "왜 이 순서야?" "유저 실수를 줄이기 위해 결제 금액 확인을 먼저 놨습니다. 그 다음 결제 수단 선택. 마지막에 최종 확인." "좋아." 그 한 마디가 이제는 두렵지 않다. 그건 내 설계가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내가 생각을 했다는 뜻이다.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획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아직도 완벽히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안다. 복사 기계가 아니라는 것. 사수한테 여전히 질문할 때 눈치는 본다. 근데 틀린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뭘 모르는지 알고 질문하니까. "이 부분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물으면 답이 나온다. 그 다음엔 배운다. "왜 이렇게 했어?"라는 질문은 이제 공포가 아니다. 그건 그냥 대화다.오후 3시. 사수 콜. 여전히 긴장된다. 근데 다르다."왜?"를 두려워하지 말고 먼저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