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서는 100% 완성된 후에 보낼까, 80% 상태로 피드백받을까

기획서는 100% 완성된 후에 보낼까, 80% 상태로 피드백받을까

기획서는 100% 완성된 후에 보낼까, 80% 상태로 피드백받을까

어제 밤 11시까지 붙잡았다

기획서 하나 쓰는데 사흘째다. 화면 정의서 8장. 플로우차트 3개. 요구사항 정리 2페이지. 사수한테 보여주려고 만들었다. 근데 계속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조금만 더”를 10번 했다.

월요일 오전 회의에서 사수가 말했다. “신기획님, 로그인 플로우 기획서 목요일까지 부탁해요.” 오늘이 수요일 저녁이다. 내일 아침에 보내야 한다.

근데 자꾸 손이 간다. ‘이 케이스는 빠진 거 아니야?’, ‘여기 설명이 부족한데?’, ‘개발자가 이거 보고 이해할까?’

11시에 저장하고 껐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서도 생각난다. ‘아, 에러 케이스 하나 더 추가해야 하는데.’

오늘 아침, 결국 못 보냈다

9시 50분 출근. 10시까지 보내려고 했다. 파일 열었다. 다시 읽어봤다. 또 이상하다.

‘여기 화면 전환 로직이 명확하지 않아.’ 수정했다. 30분 지났다. ‘버튼 라벨 정의가 애매해.’ 또 고쳤다. 1시간 지났다.

사수가 슬랙 보냈다. “신기획님, 기획서 진행 어때요?”

손이 떨렸다. “거의 다 됐습니다. 오후에 보내드리겠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90%는 됐다. 근데 그 10%가 신경 쓰인다.

점심시간에도 노트북 켜놨다. 김치찌개 먹으면서 화면 정의서 보고 있었다. 동료가 물었다. “뭐 그렇게 봐?” “아니, 그냥요.”

오후 3시. 여전히 못 보냈다. 케이스 하나 더 추가했다. 플로우차트 화살표 하나 수정했다. 문구 다듬었다. 이제 95%다.

근데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1주일 전엔 반대였다

지난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회원가입 플로우 기획서. 그때는 60% 상태로 사수한테 보냈다. “일단 방향성 맞는지 봐주세요.”

사수가 30분 만에 답했다. “전체적으로 괜찮은데, 소셜 로그인 케이스가 빠졌어요. 그리고 이용약관 동의 플로우는 법무팀 검토 먼저 받아야 해요.”

멘붕왔다. ‘아, 이것도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날 야근했다. 처음부터 다시 짰다. 결국 이틀 더 걸렸다.

그래서 이번엔 다짐했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보내자.’ 지적받을 부분 없게. 한 번에 OK 받게.

근데 지금 보니까, 그것도 문제다. 완벽하게 만들려다가 시간만 가고 있다.

선배 기획자한테 물어봤다

퇴근 전에 팀 선배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2년차 선배다. 나보다 1년 먼저 입사했다.

“선배님, 기획서 보낼 때 얼마나 완성하고 보내세요?”

선배가 웃었다. “왜, 또 사수한테 보내기 무서워?”

들켰다. “네… 계속 부족한 것 같아서요.”

선배가 모니터 돌렸다. 본인이 작성 중인 기획서를 보여줬다. 빨간 글씨로 ‘TODO’ 가 5개나 있었다.

“나도 이 상태로 내일 검토 요청할 거야. 70% 정도?”

“네? 근데 TODO가…”

“그래서 보내는 거지. 혼자 고민하면 일주일 걸려. 그런데 이 상태로 피드백받으면 하루 만에 방향 잡혀.”

선배가 덧붙였다. “신기획 씨는 100% 만들려고 하잖아. 근데 그 100%가 진짜 100%인지는 어떻게 알아? 사수가 ‘이거 방향 아닌데’ 하면 그 100%가 0%가 되는 거야.”

가슴에 꽂혔다.

그래서 오늘 6시에 보냈다

선배 말 듣고 결심했다. 85% 상태로 보내기로. 완벽하지 않아도 방향성은 잡혔으니까.

파일 열었다. TODO 주석 두 개 남겨뒀다.

  • [TODO] 에러 케이스 A-3 구체화 필요
  • [TODO] 개발 우선순위 협의 필요

슬랙 보냈다. “사수님, 로그인 플로우 기획서 공유드립니다. 아직 TODO 남아있는데, 전체 방향성 먼저 검토 부탁드려요.”

떨렸다. ‘미완성 보내는 거 맞나.’ 근데 보냈다.

30분 뒤 답장 왔다.

“확인했어요. 전체적으로 잘 정리됐네요. 다만 OAuth 플로우가 빠진 것 같은데, 백엔드 개발자분이랑 먼저 논의하고 추가해주세요. TODO 부분은 내일 아침에 같이 봐요.”

10초 만에 방향 잡혔다. OAuth. 생각도 못 했다. 만약 내가 혼자 이틀 더 붙잡았으면 어땠을까. OAuth 없이 ‘완벽한’ 기획서 만들었을 것이다. 쓸모없는 완벽.

다음날, 아침 미팅

사수랑 15분 미팅. 어제 보낸 기획서 리뷰.

“여기 TODO 표시해둔 부분 좋았어요. 뭘 고민 중인지 알 수 있어서.”

칭찬이었다. 미완성으로 보낸 게 칭찬받았다.

“신기획 씨, 기획서는 대화 도구예요. 혼자 완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팀이랑 같이 완성하는 거죠. 80% 상태로 빨리 공유하는 게, 혼자 100% 만들려고 일주일 쓰는 것보다 낫습니다.”

노트에 받아적었다. “기획서 = 대화 도구”

“다음부턴 초안 단계에서 한번, 중간에 한번, 더 자주 보여주세요. 방향 틀어지기 전에 잡아줄게요.”

고개 끄덕였다. 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서 내가 정한 기준

혼자 고민 끝에 기준을 만들었다. 나만의 피드백 타이밍.

30% - 방향 확인 요구사항 정리하고, 큰 플로우 스케치했을 때. “이 방향 맞나요?” 물어보기. 여기서 틀리면 전체가 틀린다.

70% - 구조 검토 화면 정의서 뼈대 잡고, 주요 케이스 정리했을 때. “이렇게 가는데 빠진 거 없나요?” 구멍 찾기.

90% - 최종 검수 디테일 다듬고, 문구 정리하고, 개발 전달 직전. “이제 괜찮나요?” 마지막 확인.

처음엔 70%가 불안했다. ‘더 완성하고 보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지금은 70%가 적기다. 혼자 90%까지 가면 이미 늦다.

완벽주의는 미루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제 새 기획서 시작했다

결제 플로우 기획서. 이번엔 다르게 했다.

  • 1일차: 요구사항 정리, 플로우 스케치 (30%)
  • 1일차 오후: 사수한테 공유, “방향 이거 맞나요?”
  • 2일차: 피드백 반영, 화면 정의서 작성 (70%)
  • 2일차 저녁: 다시 공유, “구조 검토 부탁드립니다”
  • 3일차: 디테일 보완, 개발팀 공유 준비 (90%)

3일 만에 끝났다. 이전 같았으면 일주일 걸렸을 일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100%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30%, 70%, 90% 피드백이 쌓여서 100%가 된다.

완성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완벽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같이 채워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