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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9시, 지난주 기획서를 다시 읽은 느낌

월요일 아침 9시, 지난주 기획서를 다시 읽은 느낌

월요일 9시 12분 출근했다. 커피 뽑았다. 노션 켰다. 지난주 금요일에 작성한 기획서가 보인다. "신규 기능 PRD_v1.2_최종_진짜최종_0118.pdf" 금요일엔 완벽했다. 사수한테 칭찬도 들었다. "구조 잘 잡았네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이상하다.2분 전 나는 천재였다 금요일 오후 6시. 기획서 마무리했다. 사용자 시나리오 3개. 화면 플로우 8개. 예외 케이스 12개. "완벽해." 저장 눌렀다. 사수한테 슬랙 보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 7시에 답장 왔다. "구조 괜찮은데요? 월요일에 개발팀 공유하죠." 기분 좋았다. 치킨 시켰다. 맥주 마셨다. 주말 내내 생각했다. "이번엔 제대로 했어." 그런데 지금 같은 문서다. 같은 내용이다. 근데 왜 이렇게 이상하지. "사용자가 로그인 후 메인 화면에 진입하면..." 이 문장. 금요일엔 명쾌했다. 지금은 애매하다. '진입'이 뭐지. 클릭인가. 자동 이동인가. 화면 플로우를 본다. 8개 화면. 금요일엔 논리적이었다. 지금은 5번 화면이 이상하다. "왜 여기서 팝업이지?" 예외 케이스 12개. 금요일엔 꼼꼼했다. 지금 보니 빠진 게 보인다. "네트워크 끊기면?"나는 지난주와 다른 사람인가 진지하게 생각했다. 금요일의 나: 기획서 쓰는 천재 월요일의 나: 기획서 읽는 바보 이게 맞나. 아니면 금요일의 나는 착각했던 건가. 커피 한 모금 마셨다. 세 번째다. 노션 히스토리 확인했다. "최종 수정: 금요일 오후 6시 23분" 48시간 전이다. 48시간 만에 내 기준이 바뀐 건가. 사수한테 물어볼까 슬랙 창 켰다. "@김OO 님"까지 썼다. 지웠다. 뭐라고 물어. "제가 금요일에 쓴 기획서가 이상해요?" 사수는 "괜찮다"고 했다. 내가 이상한 거다. 아니면 사수도 월요일에 다시 보면 이상하다고 느낄까. 모르겠다. 일단 혼자 고친다. 고치기 시작했다 "사용자가 로그인 후 메인 화면에 진입하면" → "사용자가 로그인 완료 시 자동으로 메인 화면으로 이동하며" 더 명확하다. 왜 금요일엔 안 보였지. 5번 화면 팝업. 삭제했다. 토스트 메시지로 변경. 예외 케이스 추가. "13. 네트워크 연결 끊김 시" 30분 지났다. 수정사항 7개. "신규 기능 PRD_v1.3_월요일수정_0121.pdf" 저장 눌렀다.10시 반, 사수 출근 "신기획님 주말 잘 쉬었어요?" "네. 그런데..." 말을 꺼냈다. "금요일 기획서요. 제가 다시 봤는데 좀 수정했어요." 사수가 화면 본다. 30초 지났다. "어? 이게 더 낫네요. 이렇게 바꾼 이유가 있어요?" "그냥... 다시 보니까 애매한 부분이 보여서요." 사수가 웃었다. "그거 정상이에요. 저도 그래요." 정상이래 "금요일에 쓸 땐 완벽한데 월요일에 보면 이상하죠." 사수가 말했다. "시간 두고 보면 객관적으로 보여요. 금요일엔 쓰는 데 집중했으니까. 월요일엔 읽는 사람 입장이 되는 거죠." 아. "그래서 중요한 문서는 하루 뒤에 다시 봐요. 이상한 거 바로 보여요." "그럼... 제가 잘못한 게 아니라?" "아니요. 잘한 거예요. 스스로 피드백하는 거잖아요." 커피 식었다. 네 번째 뽑으러 갔다. 점심시간, 개발팀 공유 "이번 주 기획 공유드립니다." v1.3 버전 열었다. 월요일 수정본. 개발팀장이 물었다. "5번 화면에 팝업 대신 토스트로 바꾼 이유가?" 대답했다. "팝업은 사용자 플로우를 끊어서요. 토스트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좋네요." 백엔드 개발자가 물었다. "네트워크 끊김 케이스는 어떻게 처리하죠?" "13번 예외 케이스 보시면 됩니다. 로컬 저장 후 재연결 시 동기화입니다." "오케이." 회의 끝났다. 30분. 질문 6개 받았다. 다 대답했다. 오후 3시 사수가 슬랙 보냈다. "회의 잘하셨어요. 개발팀 반응 좋았습니다." 답장 쳤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제가 금요일에 본 버전이면 질문 더 많이 받았을 거예요. 월요일 수정본이 더 단단해요." 아. 그럼 금요일 버전은 완벽하지 않았던 거네. 근데 나는 완벽하다고 생각했지. 월요일의 기적 결론 났다. 금요일의 나는 작성자다. 월요일의 나는 독자다. 작성자는 맥락을 안다. 독자는 문서만 본다. 금요일엔 내 머릿속 맥락으로 읽었다. 월요일엔 문서 그 자체로 읽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보인 거다. 그게 정상이다. 이제 패턴이 보인다 지난 2년 생각해봤다. 화요일에 쓴 기획서: 수요일에 이상함 수요일에 쓴 API 명세: 목요일에 구멍 보임 목요일에 쓴 회의록: 금요일에 빠진 거 발견 항상 그랬다. "나는 왜 이렇게 실수가 많지." 실수가 아니었다. 과정이었다. 시간이 객관성을 준다. 신입 때 기억 1년 전. 첫 기획서. 3일 걸렸다. 완성했다. 뿌듯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봤다. "이게 뭐야. 쓰레기네." 갈아엎었다. 2일 더 걸렸다. 또 완성했다. 또 뿌듯했다. 다음 날 아침. 또 이상했다. "나는 기획자 재능이 없나." 그때는 몰랐다. 이게 성장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월요일 아침에 이상해 보이는 건. 금요일보다 내가 성장했다는 증거다. 48시간 동안 뇌가 일했다. 무의식이 문제를 찾았다. 그래서 월요일에 보이는 거다. 이게 반복된다. 매주 월요일마다 지난주 내가 부족해 보인다. 그게 정상이다. 루틴으로 만들었다 이제 의도적으로 한다. 중요한 문서: 하루 뒤에 재검토 급한 문서: 최소 2시간 뒤에 재검토 타이머 맞춰둔다. "14시 30분: 오전 작성 문서 재검토" 다시 읽는다. 이상한 부분 보인다. 고친다. 이게 내 프로세스다. 개발자한테 물어봤다 "형은 코드 짜고 다음 날 보면 어때요?" "리팩토링하고 싶지." "왜요?" "어제는 동작하게 하는 데 집중했으니까. 오늘은 구조가 보이니까." 똑같다. 직군이 달라도 패턴은 같다. 디자이너도 그렇다 "언니 디자인도 다음 날 보면 이상해요?" "당연하지. 간격 1픽셀씩 다 고침." "왜요?" "어제는 배치에 집중했으니까. 오늘은 디테일이 보이니까." 모두 그렇다. 사수의 조언 "신기획님 팁 하나 줄게요." "네." "금요일에 문서 완성하면 월요일까지 안 봐요. 주말에 보지 마세요." "왜요?" "주말엔 쉬어야 해요. 그래야 월요일에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요." "근데 주말에 신경 쓰이는데요." "그게 함정이에요. 주말에 고치면 또 월요일에 이상해 보여요." 맞다. 실험했다 지난주 금요일. 기능 명세서 완성. 주말에 안 봤다. 참았다. 월요일 아침. 열었다. 수정사항 4개 보였다. 깔끔하게 고쳤다. 전전주 금요일. 화면 정의서 완성. 주말에 3번 열어봤다. 매번 고쳤다. 월요일 아침. 또 열었다. 수정사항 8개 더 보였다. 머리 아팠다. 사수 말이 맞다. 왜 그럴까 주말에 계속 보면 뇌가 안 쉰다. 월요일에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 객관성이 떨어진다. 주말에 완전히 끊으면 뇌가 리셋된다. 월요일에 새로운 눈으로 본다. 지금 시각 오후 6시 오늘 작성한 문서 있다. "신규 알림 기능 기획서_v1.0_0121.pdf" 완성했다. 완벽하다. 내일 다시 볼 거다. 이상할 거다. 괜찮다. 1년 전 나에게 "신입 기획자님. 월요일 아침에 지난주 문서가 이상해 보이죠?" "네. 제가 실력이 없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성장하고 있는 거예요." "정말요?" "네. 그게 안 보이면 그게 더 문제예요. 성장이 멈춘 거니까." "그럼 계속 이럴 건가요?" "네. 평생요. 그게 일 잘하는 사람이에요." 시니어가 되면 사수가 말했다. "저도 5년 차인데 아직도 그래요." "진짜요?" "네. 어제 쓴 기획서 오늘 보면 고칠 거 보여요." "언제까지요?" "모르겠어요. 계속이지 않을까요." 희망적이다. 평생 이상하게 보인다는 게. 평생 성장한다는 뜻이니까. 월요일 아침의 의미 지난주 내가 부족해 보이는 순간. 그게 성장의 순간이다. 금요일의 나를 넘어선 증거다. 이제 안다. 월요일 아침 9시, 지난주 기획서 다시 읽을 때. 이상해 보이면 정상이다. 안 이상해 보이면 걱정해야 한다.내일도 이상하게 보일 거다. 그게 내가 자라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