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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월세 50만 원과 3600만원 연봉의 현실

신림동 월세 50만 원과 3600만원 연봉의 현실

급여명세서를 열어보는 25일 월급날이다. 3,600만 원을 12로 나누면 300만 원. 4대 보험 떼고 나면 손에 쥐는 건 250만 원 정도. 월세 50만 원 나가고, 관리비 10만 원, 통신비에 교통비까지 합치면 80만 원은 그냥 증발한다. 남는 건 170만 원. 점심은 회사 근처 8,000원짜리 김치찌개.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 5,000원. 한 달이면 식비만 30만 원. 데이트 비용 월 20만 원은 기본. 친구들 결혼식 축의금 시즌 오면 완전 망한다. 부모님 용돈은 꿈도 못 꾼다. 통장 잔고는 항상 100만 원대. 비상금이라고 하기엔 너무 적고, 저축이라고 하기엔 창피한 금액. 이게 2년 차 기획자의 현실이다.신림동 6평 원룸의 방정식 부동산 앱을 열면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이게 신림동 시세다. 역세권은 60만 원. 강남까지 30분이면 간다는데, 출퇴근 지하철에서 1시간은 선다. 원룸 구조는 다 똑같다. 문 열면 신발장, 화장실, 그리고 침대 놓으면 끝나는 공간. 책상은 침대 옆에 붙여야 하고, 옷장은 빌트인이라 불리는 벽장 하나. 요리는 포기. 인덕션 하나에 싱크대가 전부다. 집주인한테 "에어컨 좀 새 걸로 바꿔주세요" 했다가 "싫으면 나가세요" 들었다. 계약서에 '현 상태 그대로'라는 한 줄. 벽에 못 하나 박으려면 눈치 본다. 이게 월세 사는 사람의 처지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카페 간다. 아메리카노 4,500원. 한 달이면 18만 원. 결국 월세 말고도 '살기 위한 돈'이 계속 나간다. 6평에서 인생을 산다는 게 이렇다.사수한테 "괜찮아요?" 듣는 순간 아침 10시 출근. 사수가 "어제 기획서 봤는데, 이 부분 다시 해봐" 한다. 밤 11시까지 고쳤는데 또 수정이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자리로 돌아온다. 화면 정의서 5페이지를 3시간 동안 쓴다. 이 버튼이 여기 있어야 하나, 저기 있어야 하나. 사용자 시나리오는 맞나. 예외 케이스는 다 생각했나.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개발자가 슬랙으로 "신기획님, 이 로직 어떻게 되는 거예요?" 물어본다. 순간 멈춘다. 로직? 생각 안 해봤다. "제가 확인하고 답변드릴게요" 타이핑하는 손이 떨린다. 점심시간에 사수가 "요즘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아?" 물어본다. "네, 괜찮습니다" 자동으로 나온다. 괜찮지 않다. 전혀 괜찮지 않다. 하지만 "힘들어요" 하는 순간 무능해 보일 것 같아서 입을 다문다. 7시 반 퇴근. 집 가는 지하철에서 노션 앱을 연다. 오늘 못 끝낸 업무 3개. 내일 회의 준비 1개. 모레까지 제출할 기획서 1개. 눈을 감는다. 내일도 똑같을 것이다."1년 뒤 나는 뭐가 달라질까" 동기는 대기업 간다고 했다. 초봉 4,500만 원. 복지 좋고, 교육 프로그램 있고, 커리어패스 명확하다고. 나는? 스타트업 2년 차에 3,600만 원. 복지는 스낵바 과자 무제한. 토요일 오후. 노트북 켜서 토이 프로젝트 기획서를 쓴다. 포트폴리오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기획자는 실력으로 말한다"는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근데 실력이 뭔지 모르겠다. PRD 작성법 유튜브 영상을 본다. "유저 스토리부터 시작하세요"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결정하세요" "개발자와 원활히 소통하세요". 다 안다. 근데 실전에서는 안 된다. 왜? 일요일 저녁. 여자친구가 "우리 언제 결혼해?" 물어본다. 대답 못 한다. 지금 통장 잔고로는 결혼식 비용도 안 된다. 전세금? 꿈도 못 꾼다. "일단 커리어 좀 쌓고" 얼버무린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본다. 1년 뒤에도 이러고 있을까. 아니면 시니어가 되어 있을까. 연봉은 얼마나 오를까. 월세 말고 전세로 이사 갈 수 있을까. 불안하다. 엄청 불안하다. 그래도 출근하는 이유 목요일 오전. 사수가 내가 쓴 기획서를 보고 "이 부분 잘했네" 한다. 단 네 글자. 근데 기분이 좋다.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회의에서 내 의견이 채택된다. "신기획님 말대로 이 플로우로 가죠." CTO가 말한다. 처음으로 기획자라는 게 뭔지 조금 알 것 같다. 사용자 경험을 설계한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퇴근길에 앱을 켠다. 내가 기획한 기능. 사용자 리뷰에 "이거 너무 편해요"라는 댓글. 스크린샷 찍는다. 노션에 저장한다. '성장의 흔적'이라는 폴더. 연봉은 적다. 월세는 비싸다. 통장 잔고는 항상 불안하다. 근데 그만두진 않는다. 아직은. 3년 차가 되면 4,000만 원은 받을 수 있을 거다. 5년 차면 5,000만 원. 시니어 기획자가 되면 7,000만 원. 팀장이 되면 1억. 숫자를 세어본다. 희망회로인 걸 알지만 돌린다. 지금은 50만 원 월세에 6평 원룸이지만, 언젠가는 전세로 이사 갈 것이다. 지금은 사수 눈치 보지만, 언젠가는 내가 사수가 될 것이다. 지금은 불안하지만, 언젠가는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언젠가는. 그때까지 버틴다. 금요일 밤, 편의점 도시락 퇴근하고 집 앞 편의점. 도시락 코너에서 5분 고민한다. 6,500원짜리 제육볶음 vs 4,500원짜리 김치볶음밥. 2,000원 차이인데 고민된다. 이게 현실이다. 김치볶음밥 선택. 계산대에서 카드 긁는다. 삑 소리. 남은 한도 확인 안 한다. 무섭다. 원룸 문을 연다. 인덕션에 도시락 데운다. 노트북 켜서 넷플릭스 틀고 혼자 먹는다. 이게 27살 주니어 기획자의 금요일 밤. 내일은 토이 프로젝트 해야지. 모레는 부모님 댁 가야지. 다음 주는 기획서 마감이지. 월요일은 회의 3개. 계속 생각한다. 도시락을 다 먹는다. 쓰레기통에 버린다. 침대에 눕는다. 핸드폰으로 채용공고를 본다. '시니어 기획자, 연봉 5000~7000'. 저장한다. 2년 뒤엔 지원해보자. 불을 끈다. 어둠 속에서 생각한다. 나 잘하고 있는 거 맞나. 이 길이 맞나. 언제쯤 여유로워질까. 답은 없다. 내일도 출근한다. 그게 전부다.월세 50만 원, 연봉 3600만 원. 숫자로 보면 빠듯하지만, 그래도 산다. 불안하지만 버틴다. 이게 지금의 전부다.